낯가림 심한 아이를 키우며, 내가 가장 바랐던 것

by 사랑주니


“ㅇㅇ가 수업 태도도 좋고 학교 활동에도 충실해요. 친구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냅니다. 어머님께서 아이를 참 잘 키우셨어요. 사랑받고 잘 자란 게 보여요.”


“학기 초에 아이들이 적는 자료가 있는데요. 가족과의 관계를 체크하는 칸이 있어요. ㅇㅇ는 아빠, 엄마, 오빠 모두와 ‘최상’이라고 적었더라고요. 이런 경우가 드물어요.”


“ㅇㅇ와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신다고요? 그런 부모님도 많지 않아요. 어머님이 아이와 사이가 참 좋으시네요.”






지난주, 고등학생 딸의 학교 상담이 있었다.


밝게 웃는 선생님은 첫인상부터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분이었다. 선생님은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수업 태도는 어떤지,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학교 안에서 보이는 모습은 어떤지를 차분히 짚어주셨다. 그러고는 혹시 선생님이 더 알고 있어야 할 점이 있는지 물으셨다.



나는 딸의 낯가림 이야기를 꺼냈다. 딸은 어릴 때부터 낯을 심하게 가렸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 담임을 만나면 그 점을 조심스레 말씀드리곤 했다. 겉으로는 무표정해 보이거나 차갑게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아이가 마음을 여는 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라고.


그 말을 들은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처음에는 아이의 태도를 다르게 받아들였는데, 이제는 조금 더 이해가 된다고 하셨다.



이상하게도, 상담을 하며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건 낯가림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다음에 이어진 말들이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말. 특별히 누구를 가르거나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 무엇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처럼 보인다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괜히 마음이 뜨거워졌다.



학교에서의 성실함이나 관계도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다른 어른의 눈에도 아이가 사랑받고 자란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집에서 내가 전하고 싶었던 것이 바깥에서도 어렴풋이 보인다는 뜻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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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기질이 다른 아이를 키울수록 더 그렇다. 어떤 아이는 밀어줘야 하고, 어떤 아이는 기다려줘야 한다. 어떤 순간에는 다독이는 게 맞고, 어떤 순간에는 한 걸음 떨어져 있어주는 게 맞다. 그래서 육아에는 정답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막기 어렵다. 어깨가 조금 펴지는 느낌도 든다. 아이가 학교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도 반갑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남는 건 내가 아이에게 건네고 싶었던 마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작은 확인이다.



나는 공부보다 먼저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이 아이가 집 안에서 환영받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잘하든 못하든, 밝든 예민하든, 빠르든 느리든 네 자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그것을 얼마나 알아차렸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적어도 다른 어른의 눈에 “사랑받고 자란 아이 같아요.”라는 인상으로 비쳤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뭉클하다.


그 말은 오래 가슴에 남는다. 잘 키웠다는 칭찬보다, 내가 아이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것이 조금은 닿았다는 확인처럼 느껴져서. 그날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괜히 혼자 웃었다.


사랑을 깊이 전하고 싶었다는 마음이 아이에게 닿았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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