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니까 오늘따라 휴대폰을 들고 있는 시간이 길더라.”
“아니야, 별로 하지 않았어. 잠깐 할 때 봤나 봐.”
“그런가. 하는 사람은 금방 한 것 같은데, 보는 사람 눈에는 내내 그것만 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더라.”
“엄마가 잘못 본 거야. 난 진짜 조금 했다니까.”
“알았어. 넌 짧게 했고, 내 눈엔 길었고. 같은 장면을 봐도 느낌은 서로 달라.”
“그건 별로다.”
“그렇지. 그래도 내 눈엔 그랬어.”
아이 말도 맞다.
잠깐 들여다봤을 수 있다. 내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옆에서 본 내 눈에는 생각보다 오래 쥐고 있었으니까.
이럴 때 문득 알게 된다.
하는 사람의 시간과 보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다는걸. 손에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금방 지나간 몇 분일 수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그 장면이 자꾸 눈에 밟힌다. 한두 번 본 모습이 겹치면, 내내 그러고 있었던 것처럼 남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이 자주 부딪히는 것도 이런 데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누가 더 맞고 덜 맞아서가 아니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서로 다른 길이의 시간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억울했을 것이다.
나는 답답했다. 둘 다 자기 자리에서 본 것을 말했을 뿐인데, 말은 쉽게 어긋난다. 휴대폰을 얼마나 했는지가 전부는 아니었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보인 건, 같은 순간을 두고도 다르게 느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은 자주 부딪힌다.
서로를 몰라서가 아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다른 시간을 살고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