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그 말이 이렇게 아플 줄이야

by 사랑주니


아이는 시험 성적이 기대보다 낮아서 별로일까.

노력이 부족한게 별로일까.

부모의 실망을 예상해서 별로일까.

아니면 혼날까 봐 별로일까.



아이의 시험 결과가 안 좋은 건 이해할 수 있다.

준비 과정이 부족하다면 부모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게 최소한의 바람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아직 아이에게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아이였던 때를 돌아보면 말이다.



그때의 나와 비교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나보다 못하다.'라는 결론이 남는다.

다른 아이들은 내 어릴 적보다 더 치열하게 사는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어떤가 하는 마음이 든다.



공부가 아니어도 무엇 하나 열심히 하면 이해할 수 있다.

게임만 하려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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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본 부모의 마음은 그렇다.



그 시절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 나는 몰랐다.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앞으로 얼마나 더한 경쟁 속에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학교가 전부이고,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아이도 같다.

모르니까 치열하지 않은 거다.

왜 꼭 그래야 하는지 모르는 거다.



'왜 그래야해요?'

'지금처럼 살면 안되나요?'

'왜 문제가 되나요?'

'이런 나를 자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우세요?'

'제 존재가 부끄러우세요?'



아이는 수많은 질문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아직 세상을 모르고 경험하지 못했기에 모르는 게 많은 것뿐이다.

모르니까 삶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고 여기는 거다.



게임을 많이 해도,

친구들과 매일 웃고 떠들어도,

밖에서 신나게 놀고 싶어하는 게 당연한 나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지내면 안 되는 걸까.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무엇 하나에 목숨 걸듯 매달려야 하는 걸까.



아이가 원한다면 모르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면 기다려주면 되지 않을까.

옆에서 길을 열어주고, 빛을 내어주면 되지 않을까.

부모로서의 마음은 세상의 혹독함을 알기에 생기는 바람이다.

그 마음을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않을까.




아이야.

나도 그 시절엔 노는 것이 가장 좋았다.

억지로 공부했다.

선생님과 부모 눈치를 보며 공부하는 척 했다.

그땐 나도 뭘 원하는지 몰랐다.

시간을 흘려 보냈다.



내 부모가 나에게 해준 말을 이제야 알겠다.

그 말을 나도 너에게 하게 될 줄이야.

그때 내 부모가 말하길.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너도 부모가 되어 네 자식을 봐라."

"그땐 네가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궁금하구나."



나도 같다.

40년 전 내 부모의 말을 너에게 하고 있다.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알 거다.

이건 부모의 마음으로 하는 말이다.



넌 네 삶을, 네가 원하는 삶을 열어가길 바란다.



결국엔 "공부해라."가 아니었다.

그땐 공부로만 들렸지만, 사실 아니었다.

내 부모가 나에게 해준 말은,

네 삶을 살아가라는 뜨거운 사랑이었다.


엄마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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