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보면서 불편해하는 나란 사람
페이스북에 주로 글을 쓰던 때 언젠가 한 번은 쓰고 싶던 주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쓰는 표현과 단어가 있는데 매번 거슬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말과 글을 사용할 때 최대한 표준어와 정확한 표현을 구사하려는 강박이 조금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쓰는 말과 글에서 불편한 지점이 꽤 많습니다.
저도 평소 주의하려 하면서도 말과 글에서 실수를 합니다. 그래도 한 번은 이에 대해 다뤄보면서 스스로 실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기 위해 씁니다.
요즘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야기할 때 항상 ~ 같습니다, ~ 같아요로 끝내더군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어떠냐고 물으면 "너무너무 맛있는 것 같아요"
신나게 놀고 있는 어린이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너무너무 기분 좋은 것 같아요"
신혼여행 와서 행복한 부부에게 물으면 "너무너무 행복한 것 같아요"
누군가가 뭔가를 매우 잘했을 때 "너무너무 잘하는 것 같아요"
(너무라는 원래는 부정적일 때 사용하는 단어도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너무 많이 쓰긴 하네요)
심지어 너무나 분명한데 "빨간 색인 것 같아요" 식으로 말합니다.
자신의 느낌이나 의견이 확실치 않습니다. 맛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지, 있는 것 같아요는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누군가를 칭찬할 때도 확실치 않습니다. 잘하는 것 같아요는 잘했다는 건가요 마지못해 칭찬하는 걸까요?
사실 80년대 말 ~ 90년대 초에 TV에서 '~같아요'라는 표현을 10~20대들이 쓰는데 이는 좋은 표현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느덧 그때 10~20대들이 중년이 되니 전 국민이 쓰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확실치 않으면 쓸 수도 있지만 '너무너무', '정말' 같은 강조어를 쓰면서 '~같아요'라고 불확실하게 마무리하는 건 앞뒤가 안 맞죠.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느끼는 시대가 된 걸까요?
혹시라도 방송으로 박제된 자신의 의견을 누군가가 SNS로 비난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걸까요? 방송이 아니어도 항상 사용하긴 하지만요.
저는 최대한 안 쓰려합니다.
말과 글을 최대한 간결하게 하려 노력합니다만 저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반인은 물론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아나운서조차 이 표현을 많이 씁니다. 굳이 왜 길게 늘여 쓸까 하는데도 웬만한 말의 마무리를 이렇게들 합니다.
정말 꼭 써야 할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 간결하게 가능합니다.
"이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는 "이제 시작합니다"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는 "출발하겠습니다"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는 "질문을 받겠습니다"로
예시야 너무 많지만 중언부언입니다. 간결하게 말한다고 성의 없거나 예의 없지도 않습니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아이'를 올림말로 표현한 '어린이'라는 말을 만드셨습니다. 1922년 5월 1일을 최초의 어린이날로 선포하기도 하셨죠.
하지만 어린이날을 제외하면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TV 어린이 프로에서 사용하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선생님들만 사용할까요?
방송 등 언론에선 굳이 '아동'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씁니다. 아이는 우리말인데 아동은 한자어입니다. 굉장히 딱딱한 느낌입니다.
제 생각에는 법률용어의 일반화가 아닌가 싶네요. 법률에서 영아, 유아, 아동, 청소년, 청년, 중년, 노년 등으로 세대를 구분하고 그에 맞는 법이 적용되지요.
우리 사회가 은근히 법률용어를 섞어 쓰면 유식한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그런 영향인지 몰라도 특히 방송에 나온 아나운서, 기자, 교수, 법조인들은 거의 100% 아동이라고 합니다.
어린이라는 좋은 말은 1년에 한 번 어린이날만 써야 할까요? 박물관에 박제된 단어일까요?
저는 업무상 어린이들을 안내해야 할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어린이 여러분", "저기 빨간 옷 입은 어린이" 이런 식으로 말하려 노력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어린 사람을 올려 부르는 말을 가진 나라 국민답게 많이 썼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자어를 가능한 한 쓰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말에 한자어가 많으니 무조건 쓰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적절한 우리말이 있는데 굳이 어색한 문어체의 한자어를 쓰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특히 업무용 문서, 보고서, 메일에 많이 쓰이죠.
우리말 대신 한자어를 쓰면 뭔가 공식적으로 무게감이 있다고 느끼는 게 아닌가 싶은데 저는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낍니다. 특히 금일, 명일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일이라는 표현은 군대시절에 처음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식 한자어더군요. 모두 일상언어에서는 절대 쓰지 않는 말이죠. 그냥 오늘, 내일, 어제라고 하면 문제가 될까요? 천박한 표현이라도 될까요?
한자어가 우리말보다 짧아서 효율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 내일, 어제보다 금일, 명일, 작일이 짧지도 않잖아요?
제발 평소에 쓰지 않는 어색한 한자어는 안 썼으면 좋겠습니다.
위 사례의 연장입니다. 금일, 작일 같은 것은 말보다 글에서 자주 쓰이지만 이 표현은 글보다 말할 때 많이 씁니다.
각종 행사에서 청중들이 일어서 있다 앉을 때 사회자는 대부분 "좌석에 착석해 주십시오"라고 하더군요.
첫 번째 든 예처럼 "좌석에 착석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도 하죠.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하면 되는데 왜 그리 평소 사용하지 않는 '착석'이라는 단어를 쓸까요? 좌석이라는 단어도 자리로 바꾼다 한들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한자어를 써야 뭔가 있어 보인다는 무의식의 발로 아닐까요?
이 표현은 스포츠 중계, 특히 야구중계에서 너무 많이 쓰입니다. 거의 모든 문장에서 이 표현을 쓰다 보니 만능 술어가 된 것인가 싶어 졌습니다. 해설가들은 물론 말을 직업으로 하는 캐스터들까지 남발하다 보니 제가 너무 예민한가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이번엔 빠른 공으로 가져갑니다", "몸 쪽 깊숙이 가져갑니다", "치고 달리기 작전을 가져갑니다"
투수가 스트라이크존의 코스를 선택할 때도 가져가고, 감독이 작전을 구사할 때도 가져갑니다.
한두 번 들었을 때는 신선한 느낌도 들었는데 중계를 들으면서 거의 모든 상황에서 '가져가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식상하다 못해 가끔은 짜증이 납니다.
상황에 따라 순간적인 재치로 신선한 표현을 잘 고르는 명 캐스터조차 이 표현을 모든 상황에 사용하다시피 합니다. 그렇게 어휘력이 부족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젠 '굵다', '가늘다'라는 단어가 사라져 가는 것 같습니다.
기둥 같은 형태가 길이에 비해 지름이 크다면 굵다, 작으면 가늘다라고 합니다.
책 같이 전반적으로 넓적한 형태의 두께를 이야기할 때 두껍다, 얇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 다리는 납작한 종이 인형이 아닌 한 가늘다고 해야 하고, 파르테톤 신전의 기둥은 두껍지 않고 굵다고 해야 맞습니다. 뱃살은 두껍다가 맞고 종이는 얇은 게 맞지요.
사람들이 이 뜻을 몰라서 안 쓴다기보다 너도 나도 그냥 한 가지만 쓰다 보니 굳이 구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영어의 영향일까요? Thick과 Thin만 있으니까요.
어쨌든 저는 아직 구분하려 애씁니다.
그 외에도 많지만 이 정도에서 그치겠습니다. 언젠가 속편을 쓸 일이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