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We Are the World 다큐멘터리 감상기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찜해놨던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을 봤습니다. 중학생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해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가사를 외웠던 노래를 다시 접하니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아직도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는 We Are the World를 어떻게 기획하고 완성하게 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 노래지만 들어보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할지도 모를 정도로 유명한 노래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덕분에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한 Live Aid라는 거대한 콘서트가 80년대에 있었다는 건 아실 겁니다. 밥 겔도프가 영국 아티스트들을 모아서 Band Aid를 만들어 Do They Know It's Christmas?라는 곡을 녹음했고 미국 가수들도 자극받아 만든 노래가 바로 We Are the World입니다.
결국 미국, 영국 가수들이 주축이 되어 양국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가 바로 Live Aid였죠.
서설이 길었으니 감상기를 써볼까요.
이 거대한 아이디어는 1984년 12월 당대 최고 인기 가수인 라이오넬 리치의 매니저인 켄 크레이건이 가수 출신 정치가였던 해리 벨라폰테를 만나 탄생했습니다. 스티비 원더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안 됐고 라이오넬 리치는 마이클 잭슨과 작곡에 들어갔습니다.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가 프로듀싱을 맡게 됩니다.
미국 최고의 가수들을 모으자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모으느냐였습니다.
결국 녹음일을 1985년 1월에 열릴 예정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 날로 정하고 며칠 전에야 데모 테이프가 완성되어 50명의 가수와 매니저에게 악보와 함께 전달됩니다.
AMA에 참석하지 않은 가수들을 모으는 것도 일이었는데 그래도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에 퀸시 존스의 이름값으로 인해 원활히 모아집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하루 전까지 버팔로에서 공연을 끝내고 바로 달려왔던 반면 모두가 참석하길 바랐던 프린스는 결국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시작인 해리 벨라폰테와 레이 찰스 등 원로부터 스티비 원더, 폴 사이먼, 티나 터너, 케니 로저스, 다이애나 로스에 전설적인 밥 딜런, 이제 막 떠오르던 신디 로퍼까지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모이게 됩니다.
프로젝트의 보안이 철저히 유지되는 가운데 라이오넬 리치는 AMA 시상식 MC에 공연까지 해야 했죠. 다른 가수 공연 중일 때 무대 뒤로 가서 진행상황을 체크했다고 합니다. 마이클 잭슨은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고 퀸시 존스와 함께 녹음실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멜로디를 다듬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모였고 완성된 곡을 보면 너무 멋진데 막상 녹음 당일은 시장바닥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미리 악보와 데모 테이프를 보냈지만 숙지하지 않은 가수들도 있었고 내내 연락이 안 되다 녹음 당일 나타난 스티비 원더는 이미 곡이 완성된 거냐고 물었죠.
그래도 퀸시 존스가 녹음하기 전 밥 겔도프를 불러서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한 취지에 대해 스피치를 하게 하면서 다들 이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인지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녹음실 문 앞에 퀸시 존스가 손으로 써서 붙여놓은 ‘Check your ego at the door(자존심은 문밖에 두고 와라)’ 문구는 자존심 센 가수들을 누르는 암묵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개성 넘치는 스타들이 일사불란하게 녹음을 할 리가 없었습니다. 신디 로퍼는 계속 산만하고 녹음할 때마다 잡음이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치렁 치렁한 귀걸이와 목걸이 찰랑거리는 소리였죠. 너도 나도 이렇게 불러보자고 주장하고 스티비 원더는 난데없이 스와힐리어 가사를 넣어보자고 하고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때 흑인음악의 전설인 레이찰스가 퀸시 존스에게 종을 치라고 합니다. 진도 나가자는 뜻이죠. 스티비 원더조차 고집을 꺾습니다. 레이 찰스는 자존심 센 스타들이 자기주장이 강해질 때마다 유머를 섞어 분위기를 잡으며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을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새벽이 되도록 조금씩 곡이 수정되고 재 녹음이 반복됐습니다. 지금처럼 디지털로 녹음해서 쉽게 편집할 수 없던 시절이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배달해 온 햄버거를 먹으며 악보에 서로의 사인을 받는 등 조금씩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 최고의 아티스트였던 라이오넬 리치는 쉬는 시간에 신디 로퍼에게 따뜻한 미소로 사인을 요청하면서 모두가 서로 사인을 해줍니다. 천방지출 이미지인 신디 로퍼는 이에 감동하여 이때부터 더 집중하지요.
새벽이 다가오면서 가수들은 점점 지쳐갑니다.
그래도 제가 제일 좋아하던 부분인 휴이 루이스와 신디 로퍼가 부르는 대목(뮤직 비디오 속 2:50부터)이 어떻게 녹음됐는지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들 지쳐갈 때 처음 이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녹음에도 합류한 해리 벨라폰테의 Banana Boat Song(Day-O)를 다 같이 부르며 힘을 내는 장면도 아주 좋았습니다. 자메이카 흑인 노예들이 바나나 농장에서 중노동을 하던 고된 삶을 노래한 곡으로 We Are The World 녹음 당시엔 해리 벨라폰테가 정치인이자 흑인 민권운동가로 활동 중이었기에 백인 가수들까지 모두 함께 부르는 장면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밥 딜런 대목이었습니다(뮤직 비디오 속 3:49부터). 포크 음악의 전설이고 다른 가수들의 존경을 받고는 있지만 정작 밥 딜런 본인의 표정은 마치 메이저리그에 갑자기 콜업되어 올라온 루키 같이 불안하고 어색했습니다. 가창력이 대단한 가수들 사이에서 읊조리듯 노래하는 스타일이 어울리지도 않아 보였고 목소리도 크게 잘 안 나왔죠. 무엇보다 밥 딜런은 이렇게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녹음을 해본 적이 없었죠. 녹음과정을 찍는 카메라와 사진작가까지 있는 환경은 더더욱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라이오넬 리치와 퀸시 존스가 녹음 관계자를 제외한 모두를 녹음실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하고 밥 딜런만의 스타일로 불러 보라고 합니다. 자신 없이 시작한 밥 딜런은 결국 자신의 스타일로 불렀지만 불안해했죠. 이때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는 너무너무 잘 불렀다고 격려하고 포옹해 줍니다. 그제야 밥 딜런이 안도의 미소를 띠죠.
서로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면 카리스마만으로는 그 집단을 끌고 갈 수는 없을 겁니다. 이때 필요한 게 따뜻함이구나 싶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밥 겔도프의 연설로 공동의 목적을 인식시키고 지쳤을 때 서로 사인을 받으며 결속을 다지는 장면과 함께 리더십이란 카리스마가 아닌 모두를 포용하고 소외되는 사람 없이 같이 갈 수 있게 격려하는 것이구나 라는 걸 느꼈습니다.
한두 명씩 자기 파트가 끝나고 귀가했지만 자기 파트가 진작 끝난 다이애나 로스는 끝까지 남아 눈물을 흘리며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을 포옹해 주는 장면도 참 좋았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리더인 라이오넬 리치는 새벽에 녹음이 마무리되고 해가 뜨고 나서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이 노래는 전 세계에 동시 발매되고 엄청난 히트를 합니다. 다음 해 그래미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휩쓴 건 당연했고요. 뒤이어 미국과 영국에서 열린 Live Aid로 이어집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저도 MBC에서 배철수의 진행으로 라이브 중계했던 공연을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Live Aid 하면 요즘 세대는 아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때문에 Queen의 공연영상으로 더 기억하겠죠. 당연히 Queen의 무대는 최고의 순간이었지만 이 공연이 바로 We Are the World와 영국 아티스트들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도 알았으면 합니다. 이후 팝스타들이 기아, 분쟁 등의 사회문제에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었기에 더더욱 소중한 노래로 기억합니다.
P.S. Michael Jackson을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