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연재소설> 2040년 노동의 종말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더 멋진 미래는 뭘까요? 제가 왔던 14년 전까지 사람이 하던 대부분의 일을 지금은 AI와 로봇이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뭔가 의미 있는 일 자체를 할 기회가 없어진 것 아닌가요? “
“기본적인 소득이 보장되고 시간이 많으면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아직도 로봇이 투입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제가 문제일까요 아니면 일하기는 싫은데 불만만 많은 사람들이 문제일까요?”
“하지만 모두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로봇이 투입되기 어려운 일들 대부분은 로봇을 투입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직종이더군요. 물론 스포츠와 공연 예술 분야는 여전히 사람들의 영역이지만요. 그 분야야말로 재능이 없으면 어려운 분야인데 대부분은 재능이 없잖아요.”
“인간 역사가 원래 그랬습니다. 재능 있는 몇몇이 대부분의 평범하고 재능 없는 사람들을 이끌고 먹여 살려왔지요. 그래서 인류가 멸종했나요? 오히려 더 번성하지 않았나요? 무엇보다 과거엔 평범한 사람들이 뼈 빠지게 일해도 못 얻을 경제적 자유를 이젠 국가와 기업이 보장해 주잖아요? 그렇다면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요?. “
말문이 막혔다. 나도 14년 전에는 누구보다 재능 있는 사람이었다. 엘리트 장교에 우주비행사면 인류의 0.01%의 재능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4년 동안 AI의 발달은 나를 무기력한 평범한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남은 인터뷰 시간은 이제 10분. 아쉽지만 짧은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한다.
“제가 있던 14년 전에 AI나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기업들조차 AI로 인해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죠. 한편으론 너무 과장된 이야기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2040년에 와보니 대부분 걱정하던 일들이 현실화됐더군요. 오히려 예상보다 더 많은 분야에서 사람이 할 일이 사라졌어요. 회장님 말씀대로 그래도 앞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전 여전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장담은 할 수 없지만요. 이야기한 대로 인간이 존재 이유를 노동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AI와 로봇이 가져다주는 여유 시간을 즐기면 안 되나요? 우리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온 미래 아닌가요? 저희 같은 기업인들이 그런 자유를 줄 테니까요 “
“한편으론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들고 더 많은 소득을 얻고 싶어 하는 동기가 없으니 소비도 감소해서 디플레이션이 왔다는 경제학자들의 분석도 있는데요. 이러면 기업에게도 안 좋은 것 아닌가요? “
“생산성 증대로 물가가 낮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소비하고 싶은 욕구가 줄어들었다는 것도 일정 부분 동의하고요. 기업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과거와 같이 인간이 노동하는 비효율적인 시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할 뿐이죠. 계속 진보하지 않으면 퇴보할 뿐입니다. “
속으로 심호흡을 하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휴머니스트라고 부르는 로봇 파괴운동 단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늘도 사옥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사람을 봤는데요. 당연히 부정적이시겠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꽤 많더군요. “
마회장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듯했지만 이내 원래의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글쎄요 전 그들에 대해 큰 생각을 안 해요. 기술이 발전한다고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된다는 식의 주장은 웃기지도 않은 망상이죠. 미래를 역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을 무슨 무슨 운동 단체라고 부르기도 싫고요. 정부가 빨리 검거했으면 하고 필요하다면 저희 회사의 역량을 제공할 의사도 있습니다. 도로에 돌들이 떨어져 있다면 빨리 치워야지요. “
참 명쾌하지만 오만하게도 느껴지는 답변이다.
갑자기 마회장이 잠깐 실례하겠다며 답변을 멈췄다. 스마트 글라스에 긴급한 보고 같은 것이 올라온 모양이다. 심각한 표정이 잠깐 스쳤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인터뷰를 마쳐야겠습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요. 제 이야기가 왜곡 없이 나가기를 바라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마회장이 급하게 회장실을 나갔고 안내 로봇이 들어와서 정중한 목소리로 카메라 철수를 재촉했다. 인터뷰 시간이 5분 남았지만 어쩌겠는가. 카메라가 2대뿐이라 철수는 금방이었다.
안내 로봇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자 건물 바깥이 소란스러웠고 보안 로봇뿐 아니라 사람도 몇 명 뛰어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당황스러웠지만 조심스럽게 안전요원의 통제에 따라 건물 밖으로 나왔다. 보안로봇들이 빼곡하게 둘러서 있었지만 그 사이로 분명 로봇 한대가 팔과 다리 하나씩이 떨어져 나간 채 널브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