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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줄에 서세요

“교수님 제가 모시고 갈까요?”


연사와 함께 밖으로 나온 후 그를 그의 차가 있는 곳까지 모시고 갈 사람이 없어서 난감했다. 그때 근처에 있던 한 학생이 나선다. “혹시 산업시스템공학과 학생인가?” “네, 1학년 최동원이라고 합니다.”


9년 전 대한산업공학회 학술대회가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열렸다. 특강에 당시 대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A박사를 초청했다. 그의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아마도 100명은 넘어 보였다. 그는 20여 명에게 사인을 해 주고 행사장을 나왔다. 그의 기사는 행사장에서 좀 떨어진 대운동장 부근에 차를 대기시켜 놓았다. A박사가 그곳까지 갈 수 있도록 동반자가 필요했다. 나는 행사의 마무리를 위해서 다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난감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1학년 최동원이 나를 구해 준 것이다.


6개월 후 청강문화산업대학 총장님의 세미나가 동국대학교 문화관 1층 덕암 세미나실에서 있었다. 학생들의 진로 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콘텐츠들이 소개되었는데 지루하게 생각한 학생들 20명 정도는 도중에 자리를 떠났다. 세미나가 끝나자 어떤 학생이 총장님에게 다가와 재미있는 내용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만든 학생 명함을 건넨다. 2학년 최동원을 다시 만난 것이다.


6개월 전 이해랑극장에서 A박사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 100명의 학생들은 긴 줄에 서는 동안 동원이는 계속 A박사 근처를 떠나지 않고 행사장 밖까지 따라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A박사 주변에 사람이 필요할 때 손을 들어 가장 짧은 줄에 선 것이었다.  나는 동원이로부터 짧은 줄에 서는 방법을 배웠다.


그 이후 짧은 줄에 서는 방법을 내 생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외식할 때는 식당이 제공하는 가장 빠른 시간에 갔다. 손님이 없는 환경에서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예약이 다 차서 빈자리가 없어도 다른 손님의 예약시간 이전까지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면 자리가 생겼다. 출근시간의 복잡한 교통체증을 없애기 위해서 아침형 인간으로 나를 개조시켰다. 사이소 히로시가 2003년 ‘아침형 인간’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을 때도 그의 머릿속에는 ‘짧은 줄’에 대한 개념은 없었을 것이다. 5시를 기상시간으로 정하고 몇 달 동안 내 몸을 연습시켰고 요즘은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4시 이전에 하루를 시작할 정도가 되었다.


내가 선물이 되어 어디에 가면 짧은 줄을 만날 수 있을까를 상상했다. 평소에 선물을 잘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동국대 팔정도 앞에서 마주치는 주차관리원과 공과대학 건물에서 일하시는 환경미화원께 사과를 7개씩 봉투에 넣어 드리면서 “이거 제가 좋아하는 사과인데 맛있어요! 드셔 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그분들과 어색한 눈인사만 나누는 사이가 아니다.


짧은 줄에 서기 위해서는 과감한 버림도 필요하다. 아침형 인간으로 개조되기 위해서 저녁자리의 2차를 없앴다. 50대 후반의 남자 사람 교수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요리, 요가, 사진 등의 새로운 취미를 위해서 골프와 절교했다. 골프 인맥이 끊어져 여가시간이 덤으로 생겼다.  


학생들에게 짧은 줄에 서는 것에 대해 수업시간에 자주 언급한다. 진로를 선택할 때 빅데이터, AI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전공 공부만 열심히 하지 말고 전시회 방문과 독서에 관심을 두라고 강조한다. 그런데도 최동원 2호, 3호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교수가 시키는 대로 하고 싶지 않은 젊은이다운 패기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학기에는 전략을 바꾸어 반대로 말해 보아야겠다. “여러분 인생을 위해서 긴 줄에 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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