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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만한 거울 목에 걸고 다니기

새해 첫날 아들 집에서 며느리가 끓여준 떡국으로 점심 식사를 마쳤다. 식사시간 동안 5개월 된 손자 하늘이가 거실 바닥에 놓인 매트 위에 누워서 혼자 놀고 있더니 울음을 터뜨린다. 하늘이를 안고 뒷마당으로 나갔다. 신선한 공기와 햇볕이 몸에 닿자마자 울음을 그친다. 아들의 말에 의하면 하늘이는 뒷마당에 나오면 100% 울음을 그친다고 한다. 인조 잔디 위에 얇은 담요를 깔고 하늘이를 엎드려 놓았다. 거실에서는 싫어하는 자세이지만 햇빛 아래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늘이와 내가 캘리포니아 햇볕을 즐긴다. 영하 10도 정도의 날씨인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호사를 누린다. 아들 집은 미국 LA에서 100km 정도 남쪽에 있다. 겨울에도 낮에는 20도 전후의 기온과 구름한 점 없는 맑은 날씨를 어렵지 않게 접한다.


그다음 날 우연히 햇빛이 유난히 귀한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3,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한 마을(Rjukan)은 계곡에 위치하여 매년 9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 기간 동안 햇빛을 즐기려면 산길로 마을보다 450m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2013년부터 이 마을에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 마을의 햇빛을 막고 있는 산 위에 직사각형 모양의 거울 3개를 설치한 것이다. 거울 하나의 크기는 17 제곱미터이고 해의 위치에 따라 거울의 방향이 조절되어 마을에 빛을 보낸다.


“거울 세 개로 온 마을을 비춘다고?”


호기심이 발동해서 검색을 더 해 보았다. 그 마을 사람들이 햇빛을 즐기고 있는 사진을 찾았다. 거울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광장의 중앙을 비추고 있었다. 빛을 받는 면적을 계산해 보니 가로, 세로 각 25m 사각형 크기 정도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목에 뭔가를 걸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뜨였다. 자세히 보니 호떡만한 크기의 거울이다. 그들이 왜 거울을 목에 걸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받은 햇빛을 남에게 전하기 위함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왜 산에 거울을 설치해서라도 햇빛을 받기 원했을까? 사람은 충분한 햇빛을 받으면 우울증, 불쾌함, 불면증의 원인이기도 한 멜라토닌의 감소를 방지하고 생체리듬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햇빛을 통해 비타민D가 생성되어 면역력도 강화된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신년 목표를 세운다. 나의 경우는 만보 걷기, 책**권 읽기, 글쓰기, 가족여행, 은퇴 후 계획 등 주로 나와 가족을 위한 것이다.


매년 나 자신만을 위해 햇빛 잘 드는 곳을 찾아다녀 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햇빛을 잘 받고 있으면서 더 높은 곳을 차지하려고 위만 보고 올라갔다. 교수라는 이름표를 달고 그 이름표에 반사되는 빛 정도만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두 달이 넘는 방학을 50번 이상 지내면서 빛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내가 계곡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높은 산에 거대한 거울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거실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안고 햇빛을 찾아 나오거나 호떡만한 거울이라도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받은 빛들을 조금이나마 남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남의 말에 반응하기, 기쁜 소식 알리기, 작은 선물하기 등 호떡만한 거울의 역할은 내 주변을 밝고 따뜻하게 할 것이다.


올해 나의 신년 목표에 ‘호떡만한 거울 목에 걸고 다니기’를 적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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