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응, 결혼식에 왔던 사람들한테 카톡 보내는 거야
아니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사준 키보드 안 써?
됐어~~!
. . . . .
스마트폰에 연결해서 쓸 수 있는 최신형 무선 키보드는 그녀에게 뒷전이다. 아내는 답하지 않은 채 스마트 폰을 양손에 쥐고 두 엄지를 계속 꼬물거린다. 그런 식으로 아내는 아들 결혼식에 왔던 하객들에게 모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어느 대형교회 목사가 설교 중 질문을 던진다.
"제 설교에 가장 공감을 못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자신의 아내라고 한다. 그의 아내는 "당신이나 잘하세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목사가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평소 집에서 보여주는 너무나 인간적인 행동들 때문에 설교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내 주변 아내들은 왜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가까운, 친한, 익숙한 사람의 말을 종종 무시한다.
우리의 뇌는 익숙한 것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한다. 매일 다니는 길,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는 신경이 쓰이지 않고 반응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뇌는 낯선 사람이나 환경에서는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 뇌과학 이론에 의하면 낯선 환경에서 뇌는 새로운 신경세포를 활발히 만들어내고 시냅스(신경세포 간 혹은 신경세포와 다른 세포가 만나는 접합 부위)를 구성하는 핵심적 구조물인 스파인의 밀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아내는 나와 둘이 있을 때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무덤덤하게 카메라를 바라본다. 마치 지루한 수업을 마지못해 듣고 있는 학생의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카메라를 잡으면 결혼 전 나를 대할 때 보여주었던 상큼한 미소가 살아난다. 아내에게 나는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 되어 감동은 고사하고 관심을 갖게 하기 어렵게 되었다.
아내가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게 할 만한 방법을 생각해 본다.
언젠가 아내가 내가 근무하는 대학을 방문해서 나와 대학원생의 대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학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내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당신 교수 같네!!라고 했다" 남편이 교수인 것을 잊은 적 없지만 실제로 내가 학교에서 일하는 모습은 처음 본 것이다. 가끔은 멋을 내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 가는 것으로도 아내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을 바꿀 수 있다. 물론 자주 해서 ‘익숙함’이 되면 약발이 떨어진다.
문화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며 그 공간이 침해될 때에는 불편함, 불안, 분노 등의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와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으로 지내온 YJ가 자신의 결혼 30주년 여행을 자랑한 적이 있다. 혼자 20일 동안 자전거를 타면서 제주도 여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그의 아내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30주년 기념일을 부부가 따로 보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별 이상한 부부도 다 있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 사이에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시간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와 아내는 각자의 충분한 공간을 유지하고 지내고 있는 것일까? 일주일 전에 아내에게 용기를 내어 말했다.
여보 당신은 친구들하고 같이 여행 안 가?
나는 당신하고 가는 게 더 좋아! 왜? 당신은 나랑 가는 게 싫어?
아, 아~~니!! 당연히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