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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쉼터

#POTD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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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20분쯤 걸어가면 서리풀공원 입구가 나온다. 이 공원은 작은 산 위에 있고 정상에는 할아버지 쉼터라는 곳이 있다. 할아버지 쉼터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는 할머니 쉼터가 있다. 어떻게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녀 70세 부동석을 주장하는 어떤 분이 만들었을 것 같다. 할아버지 쉼터는 서리풀공원 입구에서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쉼터에 오르면 적당히 숨이 차 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 높지 않은 곳인데 멀리 대모산, 남한산성, 롯데타워 등이 보인다.


그날도 할아버지 쉼터에 올랐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3명의 남자아이들이 모여 앉아있는 모습에 끌렸다. 아마도 게임기나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는 듯했다. 동네에서 젤루 높은 곳에 오른 후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스크린을 보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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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 학기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한 번은 남산에 오른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날을 고른다. 며칠 전부터 내가 현장 답사를 마친다. 강의실에서 출발하여 사진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모두 합해서 50분이면  충분하다. 10년 전쯤 강의 평가에 한 학생이 수업에 관한 장단점을 적었다. 좋았던 점 : 교수님과 수강생 전원이 남산에 갔던 것. 나빴던 점 : 남산에 한 번 밖에 가지 않은 것. 그러던 것이 5년 전쯤부터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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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에 '오늘 남산에 가서 단체사진 찍을까요?'라고 했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한쪽에서는 '추워요~~'라는 소리도 들렸다. 남산의 단풍 절정은 11월 중순 이후이다. 그래도 남산 가자고 했을 때 추우니까 싫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학생들의 생각, 행동 패턴 등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자연에 대해 말하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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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컴퓨터 상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들어 말하고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무엇이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 될까? AI 전문가들은 공감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자연에 대해 말하는 것이 공감력을 키우는 기본이다. 10년 전쯤 보았던 일드가 기억난다.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동물원에 갔다. 안내원이 "이 엄마 사슴은 지금 몸이 아파서 치료 중이에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한 아이가 말한다. "리셋(Reset) 시키면 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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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어 신입생을 맞이하면 나의 낡은 생각을 버리고 그들의 생각에 맞추려고 한 두 달 정도는 0점 조준을 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내가 그들에게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자연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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