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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처럼

#POTD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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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이지만 하루 일과처럼 산책 중이었다. 집 근처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고 다리 위에 서서 반포천을 내려다보았다. 어린아이가 쭈그리고 앉아서 눈 장난을 하고 그 옆에는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아이일, 아빠는 아빠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 집에서 컴퓨터로 그 모습을 다시 천천히 보았다. 이 두 사람은 서로 각자의 일에 열중하고 있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어 보였다. 아빠가 없으면 저 아이는 신나게 눈 장난에 몰입할 수 없었을 것이고 아이가 없었다면 저 아빠는 저 위치에 서 있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상대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서로 위안을 주거나 각자의 행동에 이유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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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에 있는 아들 집에 한 달 정도 다녀왔다. 출발을 앞두고 경기도 용인에서 홀로 지내시는 어머님을 찾았다. 어머님은 나와 한 달 이상 떨어져 계시는 것에 대해 은근히 불안해하셨다. 아들 삼형제 중 큰 아들은 미국, 작은 아들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마저 5주나 한국을 떠나 있을 것이라고 하니 불안한 생각이 드셨던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삼형제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서로 어머님께 안부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집에 방문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어머님은 열심히 동네 gym에 다니시면서 잘 지내셨다. 내가 서울에 돌아온 후에 어머님은 안심이 된다고 하셨다. 서울에 있을 때에도 내가 어머님을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부르면 언제든지 1시간 안에 달려올 수 있는 아들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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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Cast Away에서 주인공 탐 행크스는 택배회사(Fedex) 직원이다. 업무차 택배물이 잔뜩 실린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사고로 무인도에서 혼자 생활하게 된다. 극적으로 구조될 때까지 4년 동안을 유일한 친구 윌슨과 대화를 하면서 버텨낸다. 윌슨은 배구공의 이름이다. 택배물 중에 있던 배구공에 상처 난 자신의 손에서 흐르는 피로 사람의 얼굴을 그려 넣고 그 공을 윌슨이라고 불렀다. 매일 윌슨과 가까이 지내면서 나누었던 끊임없는 대화가 없었다면 주인공은 무인도에서 4년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내 핸드폰 속 연락처에는 전화번호가 500개도 더 된다. 그중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언제든지 시원하게 털어놓을 만한 윌슨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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