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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소나무

#POTD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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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석파정에 다녀왔다. 서울 시내에 이렇게 넓고 경치가 좋은 정자가 있었다니? 석파정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세도가인 김흥근의 별서였다고 한다. 별서는 별장과 달리 비교적 오랫동안 거주하는 공간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김흥근에게 석파정을 자신에게 매각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했다. 대원군은 석파정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인 고종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여 하룻밤을 묶었다. 김흥근은 임금이 묶었던 곳을 신하인 자신이 소유할 수 없다며 석파정을 고종에게 넘겼고 그 후 대원군의 별서로 사용되었다. 대원군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석파정을 차지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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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부당한 일을 한 적이 없는가? 우리 연구실에 10여 년 전에 있었던 학생들은 나와 음식 취향이 비슷했다. 식사를 같이 할 때 학생들에게 원하는 메뉴를 고르라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것들을 골랐다. 한 번은 세미나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데 나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같이하지 못했다. 며칠 후 연구비 카드로 결제한 내용을 보았다. 영수증에는 평소에 자신들이 싫어한다는 음식들이 적혀 있었다. 나를 위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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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에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송이 한 그루 있다. 서울시 보호수라고 되어 있으나 천연기념물이란 표시는 없다. 가까이 다가서니 옆으로 뻗친 가지들을 지탱하고 있는 철기둥이 10개 이상 보인다. 나는 이 노송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상당한 거리를 뒤로 물러서야 했다. 이렇게 크고 잘 생긴 소나무를 본 적이 있었던가?  정이품송으로 잘 알려진 충북 보은 소나무가 600년 이상 되었다고 하니 석파정 소나무도 그에 못지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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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소아과 원장님인 페친이 한 곳에서 소아과를 한 지 30년이 되었다고 한다. 축하한다는 나의 글에 그 페친은 축하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석파정 소나무가 자신의 훌륭함을 알 수 없듯이 그 원장님도 그런가 보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일로 인해 도움을 받는 사람들과 지탱해 주는 사람들이 계속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석파정 소나무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쉼터를 만들어 주었고 누군가가 늘어진 가지를 위해 기둥을 만들어 주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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