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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외

#POTD 3     열정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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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산책하는 반포천에서 비밀과외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정식 테니스 코트는 아니지만 인적이 드문 공간에 네트를 쳐놓고 100~200개의 공으로 발리 연습에 열중하는 두 사람. 라켓으로 친 공이 멀리 가지 못하도록 코치 뒤에는 또 다른 네트가 보였지만 개천으로 들어가는 공은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테니스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크면 추운 겨울날 남들의 눈의 피해 가며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을까?


내가 뭔가에 빠져서 개천가에 네트를 쳐놓을 만한 열정을 보인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본다. 박사과정 시절 나도 테니스에 빠졌었다. 학위논문 제안서를 지도 교수님에게 몇 번이나 거절당하던 시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테니스에 열중한 것이다. 그 해 여름 땀을 흘리며 하루에 7, 8시간 테니스에 몰두하기도 했다. 아내는 나에게 얼굴이 삐뚤어질 정도로 살이 빠졌다고 했다. 몇 주 만에 교수님과 논문 미팅을 했고 그 자리에서 나는 '얼마나 논문에 열중했으면 그렇게 체중이 줄었느냐?'는 말을 들었다. 속으로 나는 피식 웃었다. 그 이후는 논문은 급진전 되었고 얼마 후 졸업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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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속에 있는 열정의 아이콘은 5년 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다. 이북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월남하신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는데 남다른 열정을 지니셨다. 간혹 그 열정이 지나쳐 학생들이 배움을 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도 나름대로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버지는 나에게 영어를 가르치셨다. 발음에 예민하신 아버지는 나에게 같은 문장을 수십 번 반복하게 하셨다. 내가 중학교 입학 전에 미리 구입한 중1 교과서에는 간단한 문장을 의문문으로 바꾸는 예제들이 있었다. I am a boy. 를 Am I a boy?로 바꾸는 식이다.


아버지에게 혼이나 주눅은 들었던 나는 Am I a boy? 를 의문문답게 끝을 올리며 발음할 수 없었다. 내가 그럴수록 아버지는 그 문장을 반복하게 하셨다. 아마도 50번쯤 했을까? 드디어 아버지로부터 잘했다는 칭찬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 그 문장을 외국인에게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외국인에게 다가가서 '나는 소년인가요?'라고 묻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그때는 왜 아버지에게 '아버지, 이 문장은 쓸 일도 없는데 그냥 넘어가죠!'라고 말을 하지 못했을까? 아버지한테 뭔가를 배울 때 질문이란 것은 생각도 못했다. 그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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