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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둑님의 착한일

‘나도 은퇴 하기 전에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할텐데…’ 60대 초반 남자가 은퇴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는 평생을 보석전문 도둑으로 성실히 일해왔다. 다음날 밤 시내 유명 보석상에 들어가 크기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가격이 다른 것들을 찾아 가격표를 바꾸어 놓았다. 한 동안 주인은 이사실을 모른채 보석을 고객들에게 팔았고 고객들도 아무런 불만 없이 지냈다. 마침내 주인은 가격표들이 바뀐 것을 알고 그 동안 보석을 사갔던 고객들에게 연락해서 원래의 보석들로 바꾸었다. 고가의 보석을 값싼 보석인 줄 알았던 고객들은 그렇게 귀중한 보석을 하찮게 취급했던 자신들에게 놀랐고 값싼 보석을 고가의 보석으로 알고 행복해 했던 고객들은 값싼 보석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김형준의 ‘지금 선택해야 할 것들' 에 나오는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언제 부터인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없이 즐기며 살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위해서 저축한다는 말은 노년을 위해서 sex를 아낀다는 말처럼 들리는가 보다. 우리 연구실 출신의 학생들 중에도 졸업한 지 몇년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들이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요즘은 한 발 더 나아가 횰로(HYOLO)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혼자 욜로를 즐긴다는 뜻으로 한글과 영어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얼마전 요도(YODO, You Only Die Once)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이건 또 뭐야? 누군가 젋은이들의 관심을 받기위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냈겠지!’ 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빗나갔다. 요도는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있게 여겨야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누구나 마지막 호흡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평소와 다를 수 밖에 없다. 죽음을 앞두고 일을 더 했어야 했는데, 그 때 S전자 주식을 더 사야 했는데 같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표현을 자주 못한 것,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 건강을 잘 챙기지 못한 것 등을 후회하지 않을까? 욜로와 횰로에 비해서 요도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요도는 앞서 언급된 다른 두 가지에 비해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서 기업과 언론이 앞다투어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지 6개월이 되어간다. 여름휴가를 대부분 집에서 지내고 대학에서는 2학기에도 온라인 수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노래교실과 동창모임이 삶의 활력소였던 어머님에게는 1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아들과 식사하는 일 이외에 사람만날 일이 없어져 버렸다.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형님 부부는 4개월 이상 외식을 해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혼란을 은퇴를 앞둔 어느 도둑님이 행한 착한일과 비교해 본다. 평소에 자랑하던 해외여행은 누구에게나 그림의 떡이 되었고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던 소소한 모임들은 소중한 것이 되었다. 요도(YODO)가 주는 교훈처럼 마지막 호흡을 남겨 놓았을 때에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겪어 내면서 체험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얼떨결에 받은 이 멈춤의 시간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가격을 다시 정해본다. 어머님과의 식사는 가격인상,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진행하는 수업도 가격인상, 나의 체면을 내세우려는 자존심은 50% 가격인하, 남의 말로 받은 상처도 90% 가격인하. 이 글쓰기를 마치고 한참동안 더 가격조절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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