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렁 Jul 29. 2023

세상은 번역하기 나름

해외출장을 가서 겪었던 멋진 순간을 떠올리며

우리가 살을 맞대며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의 소망이나 바람만큼 합리적이지는 않다. 정답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이 언제나 참인 것은 아니며, 누군가의 정답이 되레 다른 이의 오답이 되는 것도 부지기수다. 어쩌면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세상을 보다 쉽게 살아가는 방법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애당초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그 대상이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해 낸 빛을 우리의 시세포가 받아들인 후 전기적 신호를 통해 뇌에 전달해 주는 간접적인 과정이다. 똑같은 사과라도 새벽녘과 대낮, 한밤중의 사과는 모두 각기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과가 가진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과와 우리 사이에 어떤 것이 놓여있느냐 다를 따름이다.




올해 초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출장을 갔었다. 평생을 한국에만 살았더라면 겪어보지 못했을 순간들을 약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지척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전력 공급 문제로 시시때때로 정전이 되는 나라가 있었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다가도, 숙소로 돌아와 씻고 있을 때도, 식당에 나가 밥을 먹을 때도 어김없이 전기가 끊기곤 했다. 어느 한 날은 퇴근하고 나서 사무실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시간이 무르익고 해가 졌을 무렵, 갑자기 정전이 되고 식당 안의 불이 꺼져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때는 출장 초반이라 자 괜스레 당황하고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앞에 앉아있던 현지 사무실 직원분이 본인이 마시던 맥주잔 바닥에 스마트폰 손전등을 켜서 놓고 비추기 시작했다. 출장에 가서 아름답고 경이로운 순간들을 많이 마주했었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왠지 모르게 불 꺼진 식당에서 빛나던 맥주잔과 그 앞에서 너스레를 떨던 사람들의 옅지만 진한 미소가 그 어떤 풍경보다 강렬하게 릿속에 남아있다. 참 멋진 사람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감상과 비평 사이 그 어드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