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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Nov 06. 2023

[감상문]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자유도가 높다는 착각만 줄 뿐이지 엔딩은 제가 결정해요"

0. 감상에 앞서

선택지가 주어진다는 사실은 단어가 가진 의미와는 역설적으로 그 상황의 자유도를 낮춘다. 메인 퀘스트 중심의 스토리 게임과 오픈월드 게임의 차이점만 생각해 보더라도 선택지와 자유도 사이의 관계는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라는 작품은 매우 영리하다. 주인공이 어떤 시리얼을 먹을지, 버스에 타서 어떤 음악을 들을지 작품은 관객에게 선택을 넘기고, 작품은 관객의 선택에 맞는 영상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를 시작으로 작품은 이야기 전개의 주요 순간마다 관객에게 선택지를 제시하며 다음 스토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데, 작품의 초중반부까지만 하더라도 관객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지만 점차 작품의 갈등이 고조되며 일종의 '배드 엔딩'을 경험하고 선택지의 이전 단계로 돌아가게 되면서 관객은 스토리 진행의 키를 쥔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이 상황은 작품의 주연인 '스테판 버틀러'가 상담사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게임에 대해 설명하는 아래 대사를 통해 완결된다.


자유도가 높다는 착각만 줄 뿐이지 엔딩은 제가 결정해요

선택지를 바탕으로 한 '인터렉티브 영화'의 궁극적 메시지가 '자유도가 높다는 착각'이라는 역설적 내용이 이 작품을 뇌리에 더 깊숙이 심어주는 것 같다.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점들을 아래에 남겨보겠다.


1. 기구한 운명에 처한 작품의 주연 '스테판 버틀러'

작품의 주연인 '스테판 버틀러'는 어린 시절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스테판의 불안한 심리상태 때문인지, 그는 상담사에게 방문해 이런저런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기도 한다. 그런 그는 '제롬 F 데이비스'라는 인물이 쓴 '밴더스내치'라는 책을 게임으로 제작하여 발매하고자 게임 제작사인 '터커 소프트'에 찾아가고, 그곳에서 그는 본인이 동경하던 게임 제작자인 '콜린 리트먼'과 만나게 된다. 여기까지가 작품의 시작점이고, 이후 관객이 어떤 선택지를 고르느냐에 따라 이 게임은 정상적으로 출시되기도, 출시된 이후에 폐기되기도, 아예 출시되지 못하기도 하며 출시된 이후의 평가도 제각각이다. 수많은 선택지와 사건들이 주어지지만, 결국 이야기의 골자는 '밴더스내치'라는 게임의 출시여부와 이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 속 주인공 스테판 버틀러의 운명은 너무도 기구했다. 내러티브 적으로만 보더라도 그는 그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이 실패하거나,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감옥에 들어가거나, 그 자신이 빌딩에서 떨어져 자살하거나, 그의 인생이 사실은 아버지인 줄 알았던 누군가와 PACS라는 단체에게 조종당하며 감시당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거나, 어머니의 죽음을 막고자 했지만 결국 같이 죽게 된다거나 하는 등 하나씩만 보더라도 충분히 끔찍한 경험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가 겪는 사건과 감정들은 이 작품의 구성방식(인터렉티브 영화)을 통해 극대화된다. 스테판은 이런 반복과 여러 선택지를 겪으며(물리적으로 겪은 것은 아니나) 점차 자신을 조종하는 외부의 존재(관객이 고르는 선택지)를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작품이 종반부로 향할수록 그는 관객이 골랐던 이전 선택지 속 세상의 기억을 잃지 않고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그를 더 비참하게 한다. 원래라면 한 번씩만 겪었으면 될 각 상황의 고통들을 잊지 못하게 되면서 스테판이 받는 고통은 점차 누적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심리 상태는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기술과 형식에 의해 생겨나는 고통. 정말 '블랙미러' 작품다웠다.


2. 선택지의 이면: 가지치기

뭐니 뭐니 해도 이 작품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바로 '선택지'이다.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작품 자체를 끝내버릴 수도 있는 선택까지 다양한 선택지들이 관객들에게 제시된다. 관객은 초반부까지는 어느 정도 본인의 선택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몇 차례의 배드 엔딩을 보고 이전 선택지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나(관객)의 선택은 점차 창작자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나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행위들은 사실 그 선택을 통해 창작자가 원치 않는 결말의 방향을 잘라내고 종국에는 하나의 결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지치기 과정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관객에게 선택지가 주어지지만 의미가 없는 경우들이 이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아버지를 살해한 후 토막 내기/매장하기 중에서 고르는 선택지, 선택지를 처음부터 하나만 주는 경우, 선택지는 두 개 제시되지만 단어만 다르고 같은 의미인 경우 등이 대표적이었고, 결국 A와 B 선택지 중에서 A를 고르더라도 다시 뒤로 돌아와 B를 골라야 하는 상황으로 유도하는 상황도 부지기수였다.


작품의 주인공인 스테판은 어느 순간부터 "날 제어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며 외부의 존재에 의해 본인이 조종당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인지하게 되고, 후반부에는 대놓고 관객에게 Sign을 달라며 역으로 질문을 건네기도 한다. 이런 스테판의 심정이 액자 식으로 확장되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심리에까지 연결되는 것 같다. 나의 삶, 이 이야기를 나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스테판과 관객은 작품이 전개됨에 따라 본인들의 의지가 아닌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을 따라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물이 반이나 남았네'와 상황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상황을 두고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2개의 선택지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그 2개의 선택지 이외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본 작품에서는 후자의 메시지를 강화하여, 2개 이외의 선택은 할 수도 없고, 심지어 두 개의 선택지 중에서도 본인이 원하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음에 대해 강조하며 스테판이 느꼈을 무력감을 더 강조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3. 다양한 소재와 상징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에는 다양한 소재와 상징들이 등장한다. 이는 작품의 전반적인 배경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일종의 맥거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며 작품 속에서 고민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관객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아래에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소재들을 남겨본다.


밴더스내치

작품의 핵심 인물이 스테판 버틀러라면, 가장 핵심이 되는 소재는 '밴더스내치'라는 그가 만들고 있는 게임이다. 스테판은 '제롬 F 데이비스'라는 사람이 쓴 동명의 책을 게임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하는데, 작중 제롬은 작품 후반부의 스테판이 겪은 것처럼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제어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결국 제롬은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만다. 이 기구한 운명은 결국 스테판에게 이어지고, 스테판의 비극은 이후 콜린의 딸이 밴더스내치의 리메이크작을 만들게 되면서 그녀 또한 선택지의 조종을 받아 게임을 만들던 컴퓨터를 부수고 만다. 밴더스내치라는 단어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 작품에 등장하는 괴수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본 작품 속에서는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이 '밴더스내치'에 얽힌 사람들의 말로가 모두 좋지 못했다.


작품의 여러 분기점에는 각기 다른 상황의 스테판 버틀러가 만든 밴더스내치 게임에 대한 평가가 나오는데, 스테판이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심리적 안정을 찾은 경우에는 게임의 평가가 5점 만점에 2.5점 정도로 급락하며,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서 만든 게임은 5점 만점에 5점을 받는다. 그의 심리상태와 게임의 완성도가 반비례하게 나타나는데, 스테판 자신을 희생하고 갈아내어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 비참했다.


다중우주

작품 속 천재 프로그래머로 등장하는 '콜린 리트먼'은 마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 여파인지 부작용인지, 그는 외부의 존재에 의해 움직이는 이 세상의 상황에 대해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다중우주에 대해 언급하며, 어차피 외부의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어 행동하게 되고 그 선택에 따라 매번 다중우주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본인의 의지로 행하였다고 생각하는 행동들도 결국엔 외부의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 일이기에 자신은 죄책감이 없다는 식으로도 말한다. 본인이 게임 속 플레이어임을 깨달은 상황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기에 그의 말이 단순히 마약에 정신을 잃은 망언으로 들리지만은 않았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논리였기에 그의 말이 더 뼈아팠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정상적인 사고는 가능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게 되었지만 막상 결론은 내릴 수가 없었다.


작품의 후반부 엔딩 중, 스테판이 거울을 통해 과거의 본인에게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순간 그는 이미 그 열차를 타면 탈선이 일어나 죽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라는 선택지를 고른 관객에 의해 스테판과 그의 어머니는 기차를 타게 되며, 예정된 열차 사고로 죽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은 상담사와 상담을 하다가 몇 분 정도 잠들었는데 갑자기 사망해 버린 스테판의 모습이 비친다. 정확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다중우주의 본인의 죽음의 여파로 다른 다중우주의 스테판도 함께 죽어버린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보았다.


PACS, PAC man

콜린이 스테판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던 도중, 팩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팩맨이 미로를 탈출하고 나면 그 탈출구는 다음 미로의 입구와 이어짐을 말하며 그 인생의 부질없음에 대해 설명하다가 그는 팩맨이 'Program and Control Man (프로그램과 조종의 인간)'이라고 말한다. 이 순간 관객의 뇌리를 스친 PAC는 이후 스테판이 아버지 방의 금고를 열 때 비밀번호로 사용된다. 그리고 그 금고 안에는 스테판이 알아서는 안될 비밀이 들어있었다. 스테판의 아버지인 줄 알았던 인물은 PACS(Program and Control Study)를 위해 그에게 약을 투여하며 스테판을 감시하고 있었고, 그가 스테판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기 위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도 연출했던 것이었다. (물론 수많은 선택지가 만들어낸 결말 중 하나이다) 결국 이는 또 스테판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PAC라는 단어가 정말 잘 만든 단어라거나 작품 전개에 있어 중요한 단어라서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는,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작품 내에서 중요해 보이도록 단어를 잘 만들어낸 것 같아서 기억에 남았다. 팩맨에 대한 이야기도 꽤나 흥미로웠지만, 이후에 검색해 보니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제4의 벽 관련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라는 작품 자체가 제4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상정한 작품이기는 하나,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벽이 허물어진 장면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아버지를 죽이고 평점 5점의 밴더스내치를 완성시켰지만 살인이 발각되어 감옥에 가게 된 스테판을 이어 리메이크 작품을 만들게 된 콜린의 딸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과거 시점의 배경은 어느새 현대식 배경으로 바뀌어있었고, 그녀는 이 작품을 넷플릭스와 함께 제작하고 있냐고 질문을 받기도 하며, 그녀가 작동시킨 밴더스내치 게임의 첫 장면은 관객이 지금까지 봐왔던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의 첫 장면이었다. 제4의 벽이 깨지며 액자식으로 구성되는 점이 흥미로웠고, 이후에 봤던 블랙미러의 <존은 끔찍해> 편도 떠올랐다. (제4의 벽, 액자식 구성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이어서 흥미로웠다.)


두 번째 붕괴는 스테판이 상담사와 상담을 받는 장면에서 일어났다. 이 장면 이전에 그는 관객에게 Sign을 요구했고, 나(관객)는 "NETFLIX"라는 선택지를 고르며 과거의 그에게 선택지를 통해 넷플릭스에 대해 설명을 건넨다. 이후 그는 혼란한 심정으로 상담사에게 이 내용을 그대로 털어놓는데, 상담사는 이 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해 보자고 말하며 정말로 이 순간이 누군가의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장면이라면 이렇게 재미없을 리가 있냐고, 액션 신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리고 이후 상담사와 결투를 하거나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두 가지 선택지가 등장하며,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선택지를 고른다면 갑자기 감독이 '컷'을 외치며 촬영을 중단시킨다. 그리고 일순간 스테판이 있던 주변은 작품 촬영세트로 변하며, 감독은 각본을 들고 와 보여주며 창문은 열리지 않고 뛰어내리는 장면은 각본에 없다며, 상담가와 싸우는 장면 촬영이 필요함을 설명해 준다.


두 장면 모두 작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을 연출하면서 분위기의 환기와 함께 작품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준 것 같다. 제4의 벽의 붕괴는 너무 과도하고 맥락 없이 사용하지만 않으면 작품을 흥미롭게 해주는 감초 역할을 해준다. 특히 이 밴더스내치 작품은 작품 자체가 관객과 작품 관계의 붕괴를 상정한 작품이었기에 위와 같은 장면들이 들어가더라도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다.


4. 마무리하며

전반적인 스토리 자체가 그렇게까지 치밀하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기보다는, 인터랙티브 영화라는 방식을 십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또 보여줄 수 있는 적절한 소재와 표현 방식을 잘 활용했던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작품 특성상 재관람을 하더라도 재밌게 볼 수 있어서 이 점 또한 소소하게 좋았다. 참신한 구성과 절망적인 스토리. 블랙미러에는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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