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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Nov 05. 2023

[영화 감상문] 빅쇼트, 아담 맥케이

군더더기 없는 빠르고 탄탄한 구성. 지루하지 않은 실화 기반 영화

0. 감상 시작에 앞서


21세기, 2023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문화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평생 작품 관람만 하더라도 그 속도가 작품이 만들어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이런 문화의 수류를 뚫고 우리를 N차 관람의 길로 이끄는 작품들도 종종 등장하곤 한다. 서사와 인과가 정말 치밀하고 탄탄하거나, 배우의 연기가 걸출하여 작품 속 인물에 깊게 공감하고 동조하게 되거나, 미장센과 색감, SFX 등이 너무나 취향저격이거나 등등 각기 다른 N차 관람 작품들은 본인만의 뚜렷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몇 번이고 다시 보더라도 재밌었던 영화들은 <메멘토>, <프레스티지>, <인셉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테넷> 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들, <바이스>, <스포트라이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맨 프럼 어스>, <조디악>, <셔터 아일랜드>, 그리고 후술 하고자 하는 <빅쇼트>가 있었다. 특히 <빅쇼트>는 무료하거나 뭔가 시간이 붕 뜰 때 정말이고 많이 돌려본 영화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른 영화가 아닌 <빅쇼트>가 나의 N차 관람 영화의 상석을 차지하게 된 것일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꼬리를 잘 말아 정돈해 놓기 위해 <빅쇼트>라는 영화에 대한 나름의 감상문이자 설명문을 써보고자 생각하게 되었다. 아래의 감상문은 작품에 대한 나름의 감상이자 나의 심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설명문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1. 영화의 소재 및 구성


<빅쇼트>는 미국 증권가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무분별한 주택 담보 대출과 이 여파로 인한 경제의 몰락, 그리고 이 몰락의 전조를 알아차리고 사회의 붕괴에 베팅한 여러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다룬 일종의 팩션(Faction) 영화이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포함한 이 사건은 좋든 싫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단순히 상업영화적 관점에서 놓고 보자면 작품으로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작품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증권가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나 개념이 생소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전개와 결말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작품을 흡인력 있게 만들어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우와는 다르게, 아담 맥케이 감독은 '이미 알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증권가와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뇌리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잘 빚어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다음 단락에서는 어떤 면에서 <빅쇼트>라는 영화가 좋았는지 풀어내보겠다.


2. 왜 좋았나


우선은 영화의 군더더기 없는 템포가 좋았다. 편집 방식, 사건의 전개 속도 등 작품이 진행되는 속도가 전반적으로 빨랐는데, 필요한 내용을 압축하거나 버렸다기보다는 필수적인 부분만 효과적으로 잘 남기고 상대적으로 힘을 빼도 되는 부분은 슥슥 잘 넘겼다. 사회적 배경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마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넘기듯 여러 상황 사진들을 보여주고, 인물에 대한 해설이나 실제 역사적 사건과의 차이점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에둘러 등장인물들의 입이나 생각을 빌리지 않고 자연스레 제4의 벽을 넘어 작중 인물이 직접 관객에게 설명을 건네기도 했다.


이 점이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각종 경제용어를 마고 로비, 셀레나 고메즈, 앤서니 버데인과 같은 유명인사를 출연시켜 설명해 주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작품 내 등장하는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때, 작품의 배경과는 동떨어진 공간(욕실, 주방 등)에서 위 유명 인사들이 등장하여 나름의 비유를 통해 경제 용어들을 관객에게 설명해 주고 역할이 끝나면 그들은 홀연히 앵글에서 사라진다. 물론 작중 등장인물의 입이나 생각을 통해 위 용어들을 관객에게 전달해 줄 수도 있었겠지만, 아담 맥케이 감독은 용어 설명을 위해 불필요한 서사와 전개를 추가하는 것보다는 유명 인사를 출연시켜 관심도도 올리고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일궈낸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본다.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인물군이 복수(數)인 것도 위와 같은 작품의 템포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 같다. <빅쇼트>는 하나의 동일한 사건에 대한 각기 다른 4개 그룹에 속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병렬로 진행시키는데, 크리스찬 베일(마이클 버리 역), 스티브 카렐(마크 바움 역), 라이언 고슬링(자레드 베넷 역), 브래드 피트(벤 리커트 역)는 그들 각자의 자리에서 한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풀어나가는지에 대한 방식 차이를 보여준다. 한 인물의 서사를 중점적으로 서술하며 주변 인물들의 서사를 함께 보여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를 병렬로 진행시키며 보여준 것이 작품에 전반적으로 리듬감을 더해준 것 같다.


편집 및 구성 외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메시지 전달과 예술성이 어느 정도 적절한 타협점을 찾은 것이 좋았다. 작품의 소재만 놓고 보자면 실제로 일어났던 사회적 사건에 대한 무서움과 경각심을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공익적 메시지를 전달해 내는 쪽으로 치우치기가 쉬웠을 것 같은데, <빅쇼트>라는 작품은 어느 정도 경각심과 메시지 전달도 하면서 영상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크게 타협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영상 자체의 구성 및 완성도도 좋았고, 정말 고증에 목매달아 왜곡 없는 교훈을 관객에게 전달한다기보다는 현실의 소재와 사건을 차용하되 작품 적으로 필요한 각색은 어느 정도 포함시켜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낸 것 좋았다.


작품의 종국에 등장인물들(마크 바움, 벤 리커트)을 통해 전해진 메시지도 물론 기억에 남았다. 주택 담보 대출이 몰락하고 그들은 결론적으로 큰돈을 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세상의 몰락, 다른 사람들의 슬픔에 베팅하여 성공하였다는 아이러니함은 작품 속 세상의 누구 하나 온전한 승자로 만들어주지 못했다. 이는 <빅쇼트>라는 작품을 투자의 귀재들의 영웅적 서사가 아닌, 시점이 다르고 세상의 이상함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알아차렸을 뿐인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꾸어놓았다. 이처럼 완전한 승자가 없는 결말은 당시 사건의 무서움과 경각심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준 것 같다.


3. 마무리하며


참신한 구성과 연출은 거기에 익숙해지면 어느 정도 관심도가 식기 마련인데, <빅쇼트>를 본 이후에 본 아담 맥케이 감독의 <바이스>, <돈 룩 업> 모두 정말 재밌게 보았다. 감독이 지향하는 방향성과 나의 영화 취향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나보다. 작품의 편집 방식이나 구성, 전개가 소위 말하는 정석적인 방식이라고 볼 수는 없는데, 원래 정석적인 왕도(道)를 걷는 것보다 사파의 길을 걸으면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본인만의 색이 뚜렷하면서도 작품성이 탄탄했기에 <빅쇼트>가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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