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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Dec 09. 2023

[독후감]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스포일러 포함) '삶과 죽음에 대해 알 수 없음'에 대해 아는 것

소설의 길이는 짧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여운이 꽤나 깊고 진하게 남았다. 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소설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작금의 조금은 혼란하면서 격양된 감정을 짧게나마 남겨본다.




크게 2부로 구성된 본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올라이'라는 남자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아들인 '요한네스'이다.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날 시작되는 이야기(1부)는 요한네스가 죽음을 맞이하며(2부) 막을 내린다. 요한네스의 삶의 일대기가 아닌 그의 시작점과 끝점을 보여준 셈이다. 책의 제목인 '아침 그리고 저녁'은 요한네스의 생의 시작점(아침)과 끝점(저녁)이었을 것이다.


플롯 자체만 보면 단순할 수 있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의 표현방식이었다. 본 작품의 문장들은 마침표나 문장기호들이 대부분 생략되어 있고, 만연체로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지는 내적 독백 같은 이야기들이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1부의 중간부에서는 올라이의 복잡한 심경이 다양한 의성어들과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아 아 저기 저기 아 아 아 저기 아 그리고 아 우 그렇게 아 에 아 에 아 쏴쏴 아 윙윙 아 오래된 강 굽이굽이 ...
(아침 그리고 저녁 소설 中)

2부에 등장하는 노년의 요한네스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친구인 페테르와 대화를 나누고 게를 잡으러 배를 타기도 한다. 그는 중간중간 상황에 대한 어색함을 느끼지만, 이내 다시금 과거에 죽은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분명 독자에게 친절한 형태의 글은 아니었다. 내용에 비해 문장의 호흡도 긴 편이고, 의성어가 포함된 부분은 조금은 난해하기도 했다. 2부에 등장하는 요한네스의 행동은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런 표현방식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상황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심리와 감정은 애당초 시계열대로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명확하지도 않다. 욘 포세 작가의 글은 인물의 머릿속을 글로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작가는 '그는 매우 혼란했다'와 같이 외부에서 상황을 서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혼란에 빠진 인물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함께 유영하는 것처럼 문장의 끝을 늘이기도 하고, 의성어들과 생각들을 뒤섞어 흩뿌리듯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게 작품 속 인물의 시선과 심리를 좇으며 상황과 인물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2부의 불명확하고 모호한 상황에서는 독자가 요한네스를 외부에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선과 심리에 독자가 동기화되어 상황을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본인은 자신의 완전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외부의 존재인 페테르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전까지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같은 플롯의 이야기를 한 발치 뒤에서 보여주며 요한네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독자에게 알려줬다면 정보전달 측면에서는 더 명료했겠지만 지금의 소설과 같은 몰입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작품의 주제의식인 삶과 죽음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서야 명료하게 파악할 수 없는데, 이 점 또한 작품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우리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배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당초 아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 또한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이는 답을 낼 수 없음이 정답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의 죽음을 알게 된 요한네스가 사후세계에 대해 페테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는데, 아래 페테르의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아침 그리고 저녁 中)




지금까지 여러 글을 보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때 어떤 방식으로 글을 써야 할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욘 포세 작가처럼 글 자체의 형식과 표현방식을 통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산문에서도 이와 같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참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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