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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Dec 12. 2023

[영화 감상문] 원라인, 양경모

인간답지 않은 일을 인간답게 하는 사람은 결국 인간답지 않은 사람이다

0. 들어가기에 앞서

 구성이나 인물 배치는 전형적인 한국 범죄/수사물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관객의 시선과 관점을 감독이 의도하는 대로 잘 유도해 냈던 영화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봤던 작품이었지만 그런 것 치고는 기억에 남는 것들이 꽤 있어서 짧게나마 감상을 남겨본다.


1. 작품의 전개 과정

영화 <원라인>의 키 플레이어는 이민재(임시완), 통칭 민대리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이민재는 이른바 작업 대출을 알선해 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장 과장(진구)에게 도움을 받아 허위로 은행에서 3,000만 원 대출을 받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민재는 사기로 얻어낸 이 돈을 그들에게서 뺏어내고, 그 돈으로 사업을 하려다 동업자였던 해선(왕지원)에게 사기를 당해 돈을 빼앗기게 된다. 이후 민대리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장 과장 아래에서 일하게 된다.


장 과장과 함께 일하던 강지원(박병은), 일명 박실장은 나름의 신념과 선을 지키며 일하는 장 과장과 트러블을 겪게 되고,  송차장(이동휘)과 함께 별도 노선을 타게 된다. 그 사이 민대리는 자신들이 행했던 대출의 말로 (심각한 부상, 죽음)를 직시하게 되고, 모든 상황을 되돌려놓고자 장 과장과 옛 동료들과 힘을 모아 박실장이 가진 돈을 빼앗아 일부는 그들이 가지고 나머지는 대출을 받은 후 고통받던 사람들에게 돌려주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2. 불신의 연쇄

작품의 표면적 소재는 작업대출과 이에 얽힌 사람들의 갈등이며, 그 기저에 깔린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신의 연쇄였다. 131분의 러닝타임동안 수도 없이 많은 속임과 속음들이 나타나는데, 누구 하나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끊임없이 아군과 적군을 속인다. 대립하는 집단들 사이에서도, 같은 집단 내부에서도 절대적 신뢰란 없었다. 나를 속였던 사람이 아군이 되기도, 아군인 줄 알았던 사람이 뒤통수를 때리기도 한다. 심지어 작업대출을 진행하던 민대리는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까지 속이기도 한다. 끊임없이 의심의 화살표와 눈초리가 방향을 트는 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해선의 역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민재(민대리)의 돈을 훔치고, 그런 민대리에게 영입되어 동업하고, 다시금 박실장 편에 붙어 일을 하는 것 같다가도 종국엔 민대리의 편에 서서 박실장의 정보를 빼낸다. 돈 외에는 모든 것이 불신이었던 해선의 포지션이 작중 비중은 낮았을지라도 그 상징성이 컸다고 생각한다.


3. 그릇된 대전제 위에 쌓아 올리는 금자탑. 감독의 시선 유도.

본 작품의 주된 화자이자 관객의 눈 역할을 하는 것은 민대리이다. 이 점이 작품을 보다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감독의 의도와 연출에 따라 자연스레 민대리의 감정선을 따라 사건들을 바라보게 되는데, 얼핏 보면 민대리는 잠깐의 실수 겸 일탈을 저지른 후에 개과천선하고 선행을 베푼 일종의 선역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누가 봐도 급진적이고 그릇된 박실장과의 대비를 통해 더욱더 부각된다. 하지만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 보더라도 민대리는 여전히 사기를 자행한 범죄자이고, 일시적으로 형사를 도왔다고는 하나 종국에는 현장에서 도망친다. 또한 그들이 박실장에게서 빼앗아 사람들에게 돌려준 돈 또한 이미 그들이 잘못했던 일에 대한 사후통보/조치 정도이며 그들은 이미 개인들의 몫을 챙겼다. 이런 양립적 생각과 의구심이 들도록 하여 관객들을 작품에 더 몰입시키는 것이 감독이 의도했던 바가 아닐지 조심스레 사견을 남긴다.


이 상황에서 비교적 중립적이고 합당한 시선을 제공해 주는 것이 천형사(안세하)의 역할 중 하나이다. 전체적 전개 과정에서 그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관객에게 객관적 시야를 제공해 주는 것 또한 주요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사기꾼에게 사기를 쳐서 사기꾼들의 돈을 뺏는 아수라장에서 그는 법에 기반한 팩트를 제시한다.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민대리가 철석같이 믿더라도 형사 입장에선 사기꾼의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민대리의 시선에서는 혼동이 올 수 있는 상황을 천형사의 시선으로 보면 어느 정도 정리가 명확해진다.


장 과장을 뒤에서 도와주는 백이사(김홍파)는 장 과장이 인간답지 않은 일을 인간답게 처리한다고 말한다.  내용만 보자면 장 과장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타당한 일을 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이 또한 천형사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공공기관 이사와 사기꾼의 만담 정도가 된다.


4.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의 함정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는 도의적 관점에서의 대답은 될 수 있지만, 법을 기준으로 보자면 어불성설이다. 결국 그 죄를 행한 것이 그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그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본 작품에서 민대리와 장 과장은 '상대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기꾼'으로 그들을 포지셔닝한다. 작업대출로 남을 돕는다고 생각했으며 합리적 브로커라고도 소개한다. 어린 시절 두 번의 신장 이식 수술로 인한 사채 빚으로 시달렸던 민대리는 본인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이는 허울 좋은 거짓이다. 그들이 행한 것이 불법적 행위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고, 민대리는 실제로 그들을 찾아가 보기 전까지는 그들의 처참한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지키고자 그렇게 행동했을 수 있지만 결국 작품의 종국까지 도망치는 그들은 결국 변하지 않았다.


5. 마무리하며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하다. 그렇기에 서로의 미숙한 부분들이 만나 갈등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불완전한 우리들이 내적, 외적으로 갈등을 겪으며 고민하고 성장(또는 도태)해나가는 과정들이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같다. <원라인>이라는 영화는 불완전하고 미숙한 우리들 사이의 갈등과 고민들을 전제부터 잘못된 사기꾼들의 세계에서 풀어나갔다. 그렇기에 더 복합적으로 고민과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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