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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3. 2022

자아 성찰

내가 나를 아는 것은 세상을 모두 안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를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가깝게 수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자아 성찰이라고 칭한다. 여기에서 나를 내려놓고 완벽하게 본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니고 부처, 하느님 정도 될 것이다.

내가 내 얼굴을 죽을 때까지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은 자신의 완벽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자신을 관측한다는 행동 자체가 자신에게 다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우리 얼굴을 거울로 보거나 사진을 찍어서 보는 것처럼,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는 존재나 대상에 빗대어 보거나 그 상태를 어림짐작할 뿐이다. 볼 수 없다고 해서 좌절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을 알아야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객관적인 방법은 외부에 객관적인 관찰자를 두는 것이다. 지구의 형태를 예로 들어보자. 지구 위에 서있는 인간은 지구가 구인지, 평면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배가 항구에서 떠날 때 점점 아래로 사라지는 모습 등을 보면서 강력한 추정은 할 수 있겠으나 눈으로 본 것은 아니라서 100% 확신은 불가능하다. 이 경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주로 직접 가서 지구 사진을 찍어오는 것이다. 이는 명명백백한 사실로, 지구 평면론자들이 반박할 수 없다. 물론 이때에는 우주로 간 카메라에 아무런 조작이 없다는 확증이 필요하다. 평면론자들은 이 경우 반드시 사진의 진위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직접 우주선에 그들을 태워 가더라도, 이게 정말로 우주로 온 게 맞냐, 가짜 아니냐고 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측자/관측장비의 무결성을 증명할 수 있는지일 것이다. 이제 이 케이스를 그대로 가져와서, 지구를 나로 바꿔보자. 나는 나에 대해 정말로 객관적으로 알고 싶다. 성격은 어떤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정말로 이게 맞는 건지 등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이 맞는지 의심이 되지만 내 안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 없다.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다 맞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혈액형 별 성격도 보고, MBTI도 보고, 심리테스트도 하면서 나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아가 보고자 노력한다. (배의 돛을 보는 항구의 사람들처럼) 하지만 진정으로 나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객관화된 관찰이다. 심리 상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다거나, 친구나 가족 등 주변인에게 나에 대해 묻는다거나 하면 외부에 자문을 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서도 순순히 납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관찰자의 신뢰도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객관성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이 관찰에 대한 또 다른 관찰이 필요하다. 위의 예시를 이어가자면, 이 심리 선생님들은 TV에도 나오고 학위도 빠방하고 연구 실적도 좋다고 소개를 받는다던가, 이 친구는 주변에서 고민 상담을 잘해주기로 소문이 났다던가 하는 식의 검증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수긍하고 만족한다면 해피엔딩이겠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꽃밭이 아니다. 1차 검증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2차, 3차... N차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이제 사람들은 1차 검증에 만족하지 못하고, 심리 선생님 학위나 대학에 대해 조사하거나, 그 친구 주변 친구들은 믿을만한지 끊임없이 캐고 다닐 것이다. 이런 루프를 끊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신뢰도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이 정도면 믿어도 되겠다'싶은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사람들은 거기에서 만족하고 그 수준의 결과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치가 굉장히 낮은 사람의 경우 혈액형 별 성격만 봐도 납득할 것이고, 조금 더 까다로운 사람은 MBTI를 보고, 더 의심이 많은 사람은 심리 상담 전문가의 말을 신뢰할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어느 정도 수렴한 나에 대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나를 알면 만족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점이다. 이 기준점이 거의 100에 가까운 사람들이 하느님, 부처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들도 이 세상에 귀속되어 있는 한 100%는 아닐 것이다.)


이런 끊임없는 루프를 끊어내고 사람들을 현혹해내는 것이 점, 무당, 타로카드 같은 부류일 것이다. 이들이 하는 행동은 사실 옆집 친구가 말하는 거랑 비슷하다. '너는 재물복이 많으니까 40세쯤에는 대성할 거고, 연애운은 좀 별로라서 사람 만날 때 조심해야 해.' 같은 말은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옆집 친구의 말에는 이를 보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기껏해야 느낌이나 나에 대한 얕은 지식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서 점집이나 무당들은 본인의 신뢰성 검증을 하늘로 떠넘겨버린다. 애기 동자님이 그러시더라, 누구누구 신님이 그랬다 등 우리가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에 본인 발언의 신뢰도를 맡겨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한 추가 검증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그들에게 신이 빙의해서 진실을 깨우쳐준 것인지, 아니면 절정의 연기로 그럴듯한 말만 하는 것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여기에서 이상함을 느낀 사람은 아예 이 내용 자체를 잊고 기각하겠지만, 여기서 잘못 이해하게 되면 신뢰도 100%의 신탁으로 여기게 되어 평생을 여기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무속신앙들도 다 생각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구나 싶다. 어느 정도 이 과정에 대해 이해하고 빠져나올 수 없는 궤변을 만들어낸 것이니 말이다.



얼마나 좋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를 향해 갈 것인지가 전체 인생 여정이라고 본다면, 자아 성찰은 여기에서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일부는 내비게이션 없이 되는대로 가더라도 운이 좋아서 성공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엄청 상세하게 어떤 차선을 타야 되고 지금은 이 길이 막히니 돌아가야 되고까지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편하게 갈 것이다. 또 다른 일부는 적당히 방향과 길 정도만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갈 것이며, 누군가는 나침반만 가지고 적당히 방향만 맞게 가기도 할 것이다. 몇 안 되는 이상한 사람들은 옆에 무당을 태우고 이 길이 좋다더라.. 이 색깔, 이 방향이 좋다며 이를 맹신하고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얼마짜리 내비게이션을 살 것인지 (자아성찰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할 것인지)를 본인 여건에 맞게 잘 선택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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