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칼의 신념
부러지지 않는 신념과 유연한 방만함 사이의 간극
내가 규정하고 추구해왔던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모습에 괴리가 있을 때, 자신에게 반문하면서 본인의 원래 영역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시점에서 본인에 대해 재고하여 다시 펑가를 내리고 변한 상황에 맞춰나간다.
두 방식에는 장단이 있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관철하는 것을 밀고 나갈 강단이 있는 것이며, 그 과정은 험난할지언정 본인이 추구하는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표리부동의 형태로 볼 수 있겠다. 후자의 경우, 맞닥뜨린 상황에 따라 본인의 신념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심도 있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여기도 저기도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다 보면, 본인과 세상의 경계가 약해지고 역으로 자아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 있다. 나는 무엇이며, 어째서 남들과 다른 나인지에 대한 정의 자체가 흐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시변통 인생이다.
부러질지언정 본인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무사의 칼이 될지, 부엌에서 쓰면 조리도구고 거실에서 쓰면 사무용품이고 밖에서 쓰면 작업용 공구가 되는 정체모를 가위 같은 날붙이가 될지의 문제다. 물론 둘 다 양극단의 사례이기 때문에, 중론인 양쪽 성향 모두 적당히 필요하다는 것이 결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