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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3. 2022

힘을 주려면 힘을 빼야 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방식으로 서술하는 법에 대하여

역설적인 문장은 관심을 끌기에 좋다. 일단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같은 글이라도 한 번 더 보게 되는 일종의 유인책 효과도 있겠고, 의미만 잘 납득시킬 수 있다면 잘못된 문장이기 때문에 평이한 문장보다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만 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힘을 주려면 힘을 빼야 한다. 이 역설적인 상황은 운동을 배우다 보면 자주 느끼게 된다. 강하게 타격하기 위해 힘을 주면 오히려 몸이 굳어서 힘 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 태권도를 배울 때는 아래와 같은 상황이 있다. 태권도의 발차기는 흔히 채찍처럼 타격해야 한다고 한다. 상대방을 강하게 타격하기 위해서 차는 동작 내내 힘을 주고 있으면 오히려 몸이 굳어서 효과적으로 힘을 전달할 수 없다. 오히려 몸에 힘을 풀고 마지막 타격의 순간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정권 지르기의 경우에도, 힘을 잔뜩 주고 때리면 어깨와 몸이 굳어서 속도도 느려지고 타격도 효과적이지 않다. 겨루기 스텝을 뛰는 것도 최대한 평정심을 가지고 필요한 순간에 바로 몸이 반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이완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글을 쓸 때 기승전결의 형태로 쓰게 되는 것도 일종의 힘 빼기 과정이다. ‘전’ 과정에서 큰 자극을 주기 위해 ‘기-승’ 과정에서는 잔잔한 충격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이와 같은 논리가 잘 맞지 않았던 경우는 ‘매드 맥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매드 맥스’의 경우 전-전-큰 전-더 큰 전-큰 전-전… 느낌으로 스토리가 구성되는데도 몰입도가 좋다. 이렇게 극한까지 벼려낼 자신이 없다면 힘을 줘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를 구분하여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

클리셰를 부수는 연출도 이와 맥락이 통한다. 가족사진을 보면 죽는 전쟁영화 클리셰를 예로 들자면, 가족사진을 든 군인을 보면 관객은 이미 저 군인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이미 그때부터 어느 정도 충격받을 준비를 하고 몸에 힘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클리셰를 비틀어 갑자기 옆에 있는 멀쩡한 동료가 죽는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힘을 빼고 있던 관객 입장에서는 강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클리셰가 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해당 논리는 이미 대중에게 인정받은 논리 전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클리셰의 힘이 너무 강해지면 오히려 효과가 반감되는 다소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클리셰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Life cycle이 표준편차 형태로 Peak에 도달한 이후 그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클리셰 생애 주기의 후반이 되면, 오히려 감독이나 작가는 해당 클리셰를 반대로 이용하기도 한다. 또 이 반대 클리셰도 관객에게 익숙해지면 한 번 더 클리셰를 꼬아서 원래 클리셰로 돌아가기도 할 것이다. 스토리라는 것도 대중의 니즈를 파악하는 능력이 의외로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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