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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3. 2022

영감과 노력

영감과 노력을 저울질하는 것에 대한 사색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번뜩이는 영감인가, 아니면 끊임없는 손가락 운동인가. 물론 빅데이터 상의 정답은 "둘 다"가 정론이겠으나, 여기에서는 두 요소의 역할 및 기여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영감을 받기 위해서는 그간의 노력이 밑바탕이 되지만, 노력을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영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식의 꼬리물기식 추론은 지양하고자 한다.

여담. 그런 측면에서 보면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는 말이 잔인하게도 맞는 말이다. 영감만 가지고는 전체 틀을 완성해낼 수 없으며, 99%의 노력은 1%의 영감이 없으면 100%에 수렴은 하더라도 도달할 수는 없다. 영감과 노력의 양립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싶다.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실력만 있다면, 결국 방점을 찍는 것은 영감인 것 같기도 하다. 기본기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임계점을 넘지 못하면 결국 세상에 나올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감과 노력을 대체재처럼 경쟁 구도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각기 역할이 다른 보완재로 보는 것이 맞겠다. 저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가야 성공이라고 치자. 그러면 복도 끝가지 달려가는 것은 노력이요, 마지막 문을 어떻게 열 것인지가 영감인 것일까? 하지만 영감이 뛰어나다면 복도 끝까지 뛰어가지 않고 옆에 있던 자전거를 타고 갈 것이다. 돌고 돌아 생각해보면, 시점의 문제로 봐야 하는 것일까? 노력은 정규 과정 / 영감은 흔히 생각하는 묘수, 꼼수로 봐야 할 것인가?

결국 도달하고자 하는 결과물, 목표 관점에서 둘을 생각해보자. 영감이 좋아서 쉽게 도달했거나, 각고의 노력으로 겨우 결승선만 넘었거나 결국에 이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두 개의 글을 읽었다고 가정하자. 첫 번째 글은 뛰어난 영감을 통해 이전에 없던 참신한 스토리를 품고 있으나 기본적인 서사에는 약하다. 두 번째 글은 스토리 자체는 평범하고 왕도를 걷고 있으나,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기본 문장력이 탄탄하다. 이렇게 놓고 보니 평가 항목이 다른 것 같다. 허름한 식당에서 여태까지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요리를 먹을 것인지, 아니면 매우 정갈한 파인 다이닝에서 정석대로 애피타이저-메인디쉬-디저트 순서로 뻔한 맛의 요리를 먹을 것인지.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결국 중요한 것은 타깃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책이라는 것도 결국 자본주의 시대의 상품이기 때문에, 시장 경제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어머니 요리가 세간에 알아서 유명해지지는 않는 것처럼, 결국에는 판매 과정이 필요하다.

에세이는 확실히 영감보다는 노력의 영역인 것 같다. 일상생활이 그렇게 다이내믹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메뉴는 정해져 있고 어떤 식당에 가서 먹을 지의 문제인데 이렇게 되면 정갈한 파인 다이닝이 더 좋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를 가정하였다. 스님의 잠언집이나 철학자의 담론처럼 심도 있는 글이 아니라 신변잡기 + 약간의 감상 정도를 상정하였다). 하지만 소설의 경우, 어떤 음식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허름한 노포라도 맛만 있으면 장땡일 것이다.

여기까지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영감과 노력은 두 가지 모두 중요하나, 글의 성격에 따라 중요도 비중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글의 종류나 목적에 따라, 영감이 부족한 노력을 메꾸고도 남을 경우가 있는 반면, 영감은 어느 정도 좋았더라도 노력이 부족하여 작가의 의도가 전달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글을 쓰기 위해서 영감부터 좇을 것인가? 아니면 번뜩일 그날을 위해 꾸준히 칼을 벼리고 있을 것인가? 우선은 밥먹듯이 칼을 벼리는 것이 맞겠다. 영감이 오면 놓치지 않도록 준비를 해놓는 것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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