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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7. 2022

바닷가 산책_과부하 된 내 마음 비워내기

탁 트인 바닷가에서 나를 리프레쉬

토요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며, 일요일에는 어디라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책, 이어폰, 노트 등을 바리바리 싸서 차에 몸을 실었다. 늘 그렇듯 차에 앉아서 시동을 켜고 갈 곳을 고민했다. 주말까지 계획을 짜면서 성실하게 살고 싶지는 않아서, 특별한 약속이나 목적이 없는 날에는 문을 나서면서 갈 곳을 고민하곤 한다.


차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니 햇살이 너무 화창했다. 평일에는 길어봐야 한 시간가량을 빼고는 건물이나 차 안에 있어서 그런지, 따뜻한 햇빛을 보고 있으면 없던 엽록체도 생겨서 광합성이 되는 것 같다.
날씨도 좋고 해서 채광이 좋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을 요량이기는 했다. 그런데 무슨 변덕인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서 다대포로 향했다. 주말에 혼자 해찰하는 것의 좋은 점은, 계획이 갑자기 바뀌더라도 꾸짖을 사람도 없고 사유서를 제출할 일도 없다는 점이다.

다대포에 종종 가는 것은 다대포가 좋은 것이 반, 새로운 곳을 찾기 귀찮은 것이 반이다. 하지만 근교의 바닷가 중에서는 다대포가 1순위이다. 다대포는 운전해서 가기도 좋고, 운전해서 가는 길도 좋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은 편인데, 다대포에 도착하기 수 km전부터 일직선으로 쭉 뻗은 해안도로가 참 예쁘다. 풍경이 너무 좋아서 작년에는 길에 적당히 차를 대고 러닝을 뛰기도 했다. 다대포 자체도 물론 좋지만, 다대포에 자주 가게 되는 것은 그 과정까지 행복하기 때문이다.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이어진 산책로. 런닝을 뛰기에도 좋고, 노을지는 풍경을 봐도 황홀하다.


나는 수영을 못한다. 실력이 부족한 수준을 떠나서 물에 뜨는 것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한다. 그런데 그런 공포의 대상이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바다는 좋다. 내가 왜 바다를 좋아하는지 깊게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좋아한다는 개념부터 너무 원론적으로 깊게 빠져들어서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은 느낌에 빠르게 생각을 멈췄다.


개인적으로 바다가 좋은 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륙이 고향인 내 입장에서, 바다가 눈에 보인다는 것은 일단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거기에서 오는 해방감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바다의 풍광이 아름다운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다대포는 아니고 작년에 갔던 거제도의 바닷가. 이 단조로움이 너무나 좋다.


일상탈출의 심리적 요인 외에 바다가 좋은 이유는 탁 트인 시야 때문이다. 기숙사 방, 회사 사무실 자리, 회사 건물 등 평소에 내 일상의 시야 범위는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 실내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며, 밖으로 나가더라도 건물 숲에 나의 시야는 가로막혀 있다. 그런데 모래사장과 바다는 내가 바라볼 수 없는 곳까지 펼쳐져 있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는 것처럼 한 바퀴 쭉 둘러봐도 내 시야에는 모래와 바다와 하늘뿐인 그 헛헛함이 만족스럽다. 내 뇌가 CPU라면, 연산해야 할 계산들이 없어서 CPU 점유율이 확 떨어지는 기분이다. 사무실이나 방에 앉아있으면,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책상, 의자, 모니터, 향수, 테이블, 셔츠 등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내가 생각하지 않는 것을 못하게 계속 정보를 떠먹여 준다. 넓고 비어있는 모래사장,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내 머리를 탈탈 털어 비워준다. 그런 휴지통 비우기가 좋다. 굉장히 당연한 말이지만, 채우기 위해선 비워야 하니까 말이다.


같은날 다대포의 바닷가. 햇빛이 수면에 반사되는 것이 마치 바다를 만나 노릇노릇 튀겨지는 것 같았다. 눈으로 봤던 감동이 다 담기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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