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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12. 2022

업(業)으로 글을 쓴다는 것의 무게

녹봉을 받기 위해 쓰는 글도 재밌을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요리도, 노래도, 글도 취미로 나의 즐거움을 위해 할 때는 즐겁지만, 막상 그것으로 먹고살 생각을 하면 막막해지곤 한다.


그럴 때는 지금까지 나의 감정이 진심이 아니었나 의심도 되지만, 각 순간의 나는 모두 진심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행위 자체보다는 행위에 부여되는 의도 및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누군가의 독촉이나 평가 없이 하는 글쓰기는 재미있다. 그런데, 나의 이번 달 생활비를 위해, 일정 압박과 퀄리티 평가를 받는 글쓰기가 재미있기란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같은 글쓰기라도 나의 여가와 생계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에 따라 그 행위가 가져다주는 기댓값이 다른 것 같다.


그럼에도 그 행위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압박감을 뛰어넘는다면, 정말 이상적인 생활이 될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글을 썼더니 돈도 주더라'가 되면 최고의 상황이 아닐까 싶다.


어찌 되었건,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생계유지를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물욕이 없다고 한들, 일용할 양식에서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다.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은 필수적이다. 예술은 헝그리 정신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배가 고픈 수준이지 아사 수준까지 상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것은, 내가 지금 위와 같은 고민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다가 풍경이 아름다워서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고 그 감상을 잊고 싶지 않아서 글을 쓰는 것은 즐겁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곱씹어볼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글을 꾸준히 쓰려고 마음먹으니 부담감이 생겨나는 것이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즐거움이 조금 식었다. 심지어는 글을 쓰기 위해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 본말이 전도된 생각도 든다.


이렇게 취미로 글을 쓰는 것도 꾸준히 하려니 부담감이 생기는데, 업으로 글을 쓰면 그 부담감이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안된다. 그래도 글 쓰는 것이 싫지는 않기 때문에, 내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 중에서는 가장 다듬어진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 쓰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덧. 녹봉(祿俸)이라는 단어
갑자기 업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아래 문장을 마주친 것에서 출발한다.

녹이 슬어야 인간은 녹을 먹을 수 있다.
(출처 : 한 글자 사전, 김소연)

 다른 브런치 글에서 위 문장을 읽고, 그렇다면 '녹봉'의 '녹'은 어떤 단어일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니, '녹'과 '봉'이 각각 다른 종류의 급여를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녹은 3개월마다 지급되는 경우인 사맹삭(四孟朔)과 그에 준하는 경우로서 아마도 수직관리(受職官吏)를 우대하는 급료제이며, 봉이나 요는 특수관직이나 잡직·임시직 등에 대한 급료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녹봉,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녹+봉은 예상외였다. 봉은 그나마 봉급이라는 단어가 익숙해 납득이 쉬워서, 녹의 어원을 추가로 찾아보았다.

 祿자는 ‘행복’이나 ‘봉급’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祿자는 示(보일 시)자와 彔(새길 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彔자는 보자기에 염료를 넣어 짜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祿자의 본래 의미는 ‘복(福)을 내리다’였다. 제사를 지냄으로써 신이 나에게 복을 내려준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지만 후에 祿자는 관리의 ‘봉급’을 뜻하게 되었는데, 이는 나라님이 주는 봉급을 신이 복을 주는 것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출처 : [한자로드(路)] 신동윤)

신이 복을 내리는 것에서 나라님이 주는 봉급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니 봉급에 대한 왠지 모를 경외감과 함께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봉급을 받도록 해주는 업에 생각이 이르렀다. 이것이 위 글의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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