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렁 Mar 03. 2022

파도의 그림자

파도는 어디에서 오는가? 나의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바닷가나 강변에 앉아 밀려오는 물을 바라보면, 그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작은 물결로 부서지듯 깨지는 파도도 있고, 이따금 큰 파고의 물결이 연신 뭍을 내리친다. 모양도, 형태도 각기 다른 파도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람에 의한 물결도 있을 것이고, 배의 움직임에 따른 여파일 수도 있다. 때로는 바닷속의 지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물고기 떼의 움직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이유를 막론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파도는 어떤 행위에 의해 정해지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다. 동굴 속 이데아에 비친 그림자처럼, 우리는 본질을 직시할 수 없고 이에 따른 결과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제 힘으로 역동하는 것 같아 보이는 파도는 결국 어떤 행위에 대한 부산물이자 여파일 뿐인 것이다.


  내리치는 파도는 돌을 깎고, 자갈을 굴리며, 땅의 모양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면 본원의 여파인 파도에 의해 모습을 바꾼 땅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파도는 악의가 없다. 다른 어떤 행위에 따른 부산물인 파도에 의해 깎여나간 땅은 그 의도를 어디에 물어야 하는가?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고 나니, 파도를 만들어낸 그 원인도 출발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파도를 일렁이게 한 바람은 기압 차이에 의해 발생하며, 또 그 기압 차이가 발생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결국 끊임없이 순환하는 인과의 고리 속에서 우리는 많아봐야 두세 개의 고리만을 보고 자웅을 겨루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세 개의 고리만을 볼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실패로 볼 수는 없다.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어폐이다. 한 시스템 내에 속한 개체가 내부에서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람이나 파도에 대한 개념이 없던 고대 사람들은 단순히 현상을 바라보는 1차원적 해석만 가능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과학이 발전하고 나서는 그 원인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졌을 것이며, 이후 기술이 더 발전하고 나서는 유체역학적으로 해석하고 예측하는 것까지 가능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인지할 수 없는 부분까지 고민하는 것은 기우이며, 돌이 떨어질까 매일 하늘만을 바라보던 닭의 우화와 다를 것이 없다.


  적어도 나는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는 나의 인생을 바람이나 파도가 아닌 내 의지에 맡겨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각자의 방식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