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음을 향해 비가역적 순행을 하는 여행자다. 차치할 수 없는 진실을 목도했음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나는 자신의 여정길이 난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무의미한 발버둥이기보다는 후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이들의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소망한다.
2173.09.15
M.
공(空)과 만(滿) 은 종이의 앞뒷면과 같다. 물감의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며, 이 세상 모든 것을 똑같이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칠흑 같은 우주는 그 깊이만큼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미지의 요람이었다. 다만 그 요람에 너무도 긴 시간 동안 머무른 나에겐 이 공간이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는 침상이 되어버렸을 따름이다. 마지막 잎새는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최후의 순간까지 나를 붙들 것인가. 그것은 잎새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2175.05.04
M.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동경하던 때가 있었지만, 정작 내가 그 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아득히 먼 곳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겐 누군가의 동경이 와닿고 있을까? 과거의 내가 품었던 동경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동경은 동일시보다는 수렴의 대상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지금의 나는 별다른 해답도, 답을 찾을 방법도, 찾고자 하는 의지도 어느 하나 선명하게 쥐고 있지 못하다. 다만 지금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동경을 손에 쥐고 앞으로 약진하고 있을 뿐이다.
2176.01.05
M.
상자는 예로부터 미증유의 존재였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구멍이 뚫린 상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의 상자,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실험에 등장하는 상자는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자극하며, 호기심과 상상력, 불확실성은 인류를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가게 해주는 연료이자 부싯돌로써 기능하곤 한다. 우리 다섯 명의 탐사의 끝엔 어떤 상자가 놓여있을까?
2177.10.25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