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선 이국의 생경한 풍경이 지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초목과 대지에겐 지호라는 존재가 외부에서 온 이질적 개체였다. 세상과 아주 약간 동떨어진 지금이 지호는 퍽 마음에 들었다. 지난 수년간 그녀는 불가피한 시간의 급류에 잠겨 있었고, 낯선 도시의 버스에 타고 차창 밖을 바라보는 지금에야 겨우 물길의 가장자리에 서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불평 일색이었을 버스의 울렁거림도 이 순간만큼은 고요히 흔들리는 요람처럼 그녀를 감싸 안았다.
안온함은 익숙함과 낯설음에서 양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고단했던 일과를 끝마치고 여느 날처럼 집으로 돌아와 소파 세 번째 자리에 등을 기대고 앉았을 때의 안락함도, 나를 알아볼 이 하나 없는 생소한 국가의 버스 차창에 앉아있을 때의 고요함도 안온함의 이면이다. 번잡한 외계로부터의 단절은 지호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긴장의 끈을 조금은 느슨하게 해 주었고, 이해하려 해도 읽을 수 조차 없는 키랄 문자는 세상으로부터의 훌륭한 차양막이었다. 깊은 고민 없이 몽골이라는 여행지를 선택했던 자신의 안일함에 새삼 감사를 표하던 중 버스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추었다.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잠시 여기서 쉬어간다는 여행 가이드의 말을 듣고 지호와 다른 여행객들은 버스 밖으로 나섰다.
버스에서 밖으로 발을 내딛은 지호의 시계(視界)는 일순간 팽창하여 초록과 하늘의 물결로 뒤덮였다. 기껏해야 회사 파티션, 버스, 방 하나 정도에 머물러있던 지호의 시야는 눈으로 봐서는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도 가늠할 수 없을 장소까지 가닿았다. 한국과 몽골에 선 지호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넓이의 세상 위의 존재였다. 싱그러운 공기가 폐를 휘감고 다시 기도를 지나쳐 밖으로 나왔고, 피로와 긴장에 구겨져있던 지호의 심사(心思)도 넓은 세상으로 조금이나마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비록 빛나는 절경은 아니었고 여정의 목적지도 아닌 경유지였지만, 순간의 감정만큼은 꽤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리라 단정(斷定)하며 지호는 다시금 주변 사람들을 따라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