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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Oct 31. 2024

무제 01 (4)

https://brunch.co.kr/@jooreong/181


봄과 가을의 18시는 같은 숫자 속에 다른 풍경을 담고 있었고, 해가 채 몸을 누이지 못한 4월과 차분한 어둠에 잠긴 11월의 그것은 사뭇 다른 촉감이었다. 몇 달 전보다 이르게 다가온 어둠의 탓인지, 아니면 하릴없이 애먼 계절에 성토하는 투정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오늘의 퇴근길은 유독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한 해를 갈음하고 다음 해의 윤곽을 가늠하는 연말의 사무실에선 여러 갈래의 일들이 와류처럼 여러 사람을 타고 굽이치고 있었고, 서일 또한 그 위에 실린 채 나부끼고 있었다. 한껏 어질러진 내면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며 치찰음을 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맴돌던 서일의 육신은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현관과 주방을 거쳐 거실로 향하며 서일은 집에 상주하는 존재들과 가상의 목례를 나눴다. 서일의 집 안엔 한결같이 대중없는 서일의 취향 조각들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는데, 그중엔 향을 발하는 물품들도 더러 있었다. 은은하게 번지는 향에 매몰되는 순간을 아끼고 즐기는 서일의 취향에 이끌려 한 자리에 모이게 된 물질들이었다. 향은 배어든다는 표현처럼 기억 속에 깊고 진하게 남는다. 서일의 머릿속엔 달기도, 꿉꿉하기도, 날카롭기도 했던 여러 향이 나름의 언어로 새겨놓은 순간과 기억들이 남아있었다. 외갓집에서 메주를 띄우던 갈색의 향, 부모님과 갔던 산에서 은은하게 퍼지던 진달래 향, 군대에서 차를 정비하면서 맡았던 매연 냄새, 미국으로 출장을 떠났을 때 창고에서 느껴졌던 케케묵은 시간의 향, 여러 이들의 감정이 겹쳐진 술집에서 나던 파전 냄새들에 얽힌 기억들은 무차별적으로 서일의 안에 남아있었다.


한 동안 현실에서 이격 되어있던 서일의 의식은 재킷 왼팔에 있는 얼룩 위로 돌연 꽂혔다. 그 얼룩은 얄궂게도 서일과 항시 눈을 맞출 수 있는 곳에 뿌리내린 채로 그를 응시했다. 평소 같았으면 세탁소에 옷을 맡기거나 인터넷에 검색하여 얼룩을 지우려 이런저런 몸짓을 했겠으나,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던 서일은 가용(可用)한 여력을 소분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었기에 그저 눈을 가리기로 했다. 재킷을 벗어 의자에 적당히 걸어놓은 후에 서일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엔 생수와 김치, 장조림과 이런저런 주류가 들어있었고, 고민할 여지없이 반찬 두어 개를 꺼내어 식탁에 놓았다. 본가에서 독립한 후에도 입맛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마트에 가거나 인터넷을 둘러보다 좋아해 왔던 반찬들이 보이면 종종 구매하곤 했던 결과물들이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받아들이기는 쉽다. 오랜 기간 쌓여온 호감을 머금은 반찬들과 함께 서일은 식사를 마쳤다.


작열하던 태양은 어느새 그 열기를 누그러뜨렸고, 어느덧 찾아온 11월의 공기는 차갑게 식어 손발 끝을 찌르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서일은 창고에서 난로와 겨울 이불을 꺼내며 겨울과 공식적인 첫인사를 나눴다. 애써 몇 주간 외면해보려 했지만 겨울은 그를 응시하며 눈길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릇 굼떠지는 계절이 돌아왔음은 한 해가 이제는 저물어간다는 방증이었고, 침대에 누워 서일은 올해를 얕게 톺았다. 새로이 만난 사람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꽤나 많았다. 그중 어떤 일은 기억에 깊게 남아 잔향을 남길 것이고, 또 어떤 일들은 물에 탄 한 방울 잉크처럼 차차 옅어져 갈 것이다. 20대의 서일은 옅어져 가는 관계와 사건들을 아쉬워하며 손에 모두 쥐고자 하는 약간의 오만 섞인 욕망을 갖고 있었지만, 30대의 서일은 자신의 손이 얼마나 작은지 나날이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는 갖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기보다는 손에 쥘 수 있었던 것들에 감사하고자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층 되는 시간과 경험은 서일의 척도를 조금씩 선명하게 해 줄 것이다. 그날 밤 서일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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