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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 17, 봉준호

두려움은 반복된다고 해서 사그라들지 않는다.

by 김주렁

0. 들어가기에 앞서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하여 '봉준호' 감독이 제작한 영화로, 한국에는 2025년 2월 28일에 개봉하였다. 작품의 외견적 배경은 미래의 우주 개척시대이며, 내부에는 생명과 인간, 감정에 대한 다양한 생각의 씨앗들이 실려있었다. 아래에 이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1. 배경과 전개

작품의 화자는 '로버트 패틴슨'이 맡은 '미키'라는 인물로, 지구에서 빚쟁이들에게 목숨을 위협받던 그는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이 이끄는 행성 탐사선의 '익스펜더블(expendable, 소모품의)'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그는 실험실의 개구리처럼 생명이 위태로운 현장에 투입되거나 각종 약물과 방사능 등에 노출되는 실험체로 활용되며, 그가 죽고 나면 미리 백업된 그의 기억을 '휴먼 프린팅'기술을 통해 인쇄한 육체에 덧입혀 다시 만들어진다. 그렇게 미키는 죽음과 인쇄를 반복하며 수많은 죽음을 겪게 되며,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17번째 미키(미키 17)가 작품의 주된 서사를 담당한다.


미키 17은 언제나처럼 위험한 외계 행성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크레바스에 빠지며, 거기서 마주친 외계 생물(후에 이들은 '크리퍼'라 명명된다)에게 잡아먹혀 죽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되레 그들은 미키를 지상으로 올려 보내주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기지로 복귀한 미키 17이 이미 인쇄되어 버린 미키 18을 마주하게 되며 작품의 갈등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다. 일찍이 휴먼 프린팅 관련 기술은 비인도적, 반인륜적이라는 이유로 지구에서 금지당했고, 우주에서만 한시적으로 허용되어 있었다. 이전에 지구에서 한 과학자가 자신을 복제하여 알리바이를 만드는 동시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동시에 두 명의 동일한 인물이 존재하는 '멀티플' 상황이 발생하면 두 존재와 그들의 원본이 되는 기억을 완전히 소멸시키도록 되어있었다. 작품은 멀티플 상황에 처한 미키, 그의 연인인 '나샤 배릿지(나오미 애키)', 그리고 마샬을 포함한 기지 내부 인물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기지 내부의 인류와 외계 행성에 살고 있던 '크리퍼'라는 생물들 사이의 갈등과 이를 풀어내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그려낸다.


2. 소재와 이에 얽힌 이야기들

두려움

본 작품은 긴 호흡의 서사보다는 매 순간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그리고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감정은 미키의 '두려움'이다. 그가 살아가는 매 순간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지구에서 그는 '다리우스 블랭크'라는 인물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고, 도피를 위해 궁여지책으로 선택했던 우주선에서 그는 수 차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은 채로 사지에 내몰려야만 했다. 그리고 미키 18을 마주한 순간 그는 소멸에 대한 공포, 자신의 애인을 미키 18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마샬에게 원본 기억을 삭제당하고 미키 18과 함께 폭탄을 몸에 두른 채 크리퍼 무리에게 내던져졌을 때도, 통역기를 통해 크리퍼와 대화하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다는 협박을 들었을 때도 역시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작품 내부에서 멈추지 않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궁금증으로 연결된다. 작중 여러 인물들이 미키에게 건네는 '죽는 건 어떤 기분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제약과 불완전함

위와 같은 불안감을 고조시킬 수 있도록 작품에서는 제한된 자원 및 상황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작품은 기본적으로 고립된 탐사선 내부에서 진행되며, 그렇기에 마샬은 한정된 자원 내에서 생활을 이어나갈 것을 요구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익스펜더블인 미키는 남들보다 더한 압박과 하대를 받는다. 기본적으로 목숨이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고, 실수를 거듭할 때마다 그의 식사는 줄어들고 업무 시간은 늘어난다. 그리고 그를 찍어내는 휴먼 프린터 기술 또한 최첨단의 장비이지만 받침대가 없어 인쇄된 그가 맥없이 기계에 매달려 떨어지기도 한다. 그의 기억을 담은 저장장치 또한 말 그대로 벽돌에 LED만 붙어있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비주얼적으로는 '카세트 퓨처리즘'이 연상되는데, 최첨단의 화려한 미래 모습보다는 왠지 모르게 불완전한 과도기의 기술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불완전함은 자연스레 안전성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서로 다른 입장

미키 17과 미키 18은 같은 기억에서 비롯했으면서도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미키 17은 보다 온건하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지고 들어가는 성미를 가지고 있었고, 미키 18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황을 참고 인내하지 않았다.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의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여 개별 개체로 만든다면, 내면의 견해 차이를 물질세계에 빚어낸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인간과 크리퍼의 갈등 또한 서로 다른 처지와 견해를 가진 두 집단을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해 낸 장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로는 각자에게 외계인이었다. 행성에 살고 있던 크리퍼 입장에서 인류는 불청객이자 난동꾼이었고, 마샬을 주축으로 한 인류 입장에서 크리퍼들은 자신의 행성 이주에 방해가 되는 하등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7

작품의 원작은 '미키 7'이지만 영화의 제목이 '미키 17'인 것은 감독의 의사가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통해 미키가 보다 많이 죽게 되면서 두려움의 크기가 커지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고, 그 외에도 17이라는 숫자를 고른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감독은 사회적 성인의 기준인 18세를 떠올렸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래 이탈리아에서 17을 싫어하는 이유가 인상 깊었기에 아래에 나무위키 내용을 옮긴다.

17 공포증
17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진짜 싫어하는 숫자다. 한국의 4, 일본의 9 포지션. 17을 로마 숫자로 쓰면 XVII가 되는데, 애너그램으로 VIXI가 된다. VIXI는 라틴어로 VIVO의 과거형인 '나는 살아 있었다'라는 뜻이고 이는 '나는 죽었다'가 된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의 빌딩들은 16층 다음에 17층이 없는 경우도 있다. 자세한 것은 라틴어/동사 활용 참조. 2018년 11월 4일에는 MBC에서 방영 중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838회에서도 익스트림 서프라이즈 코너에서 다뤘었다.

https://namu.wiki/w/17


숫자와 문자

작중 미키는 자신이 죽고 나서 태어난 횟수로 불리며, 미키 17, 미키 18로 구분되어 숫자가 자신의 성을 대신하는 것처럼 자리해 있다. 이렇게 표기되던 그의 호칭은 작품의 종국에 18의 희생과 17, 나샤의 노력으로 인류와 크리퍼를 구하고 난 후에 드디어 'Mickey Bornes'라는 온전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의 이름 뒤에 따라오던 단어가 숫자에서 문자로 바뀌며 단순한 소모품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인정받는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이에 추가로, 작품의 마지막 장면 이전까지는 시점이 숫자로 몇 년 후, 혹은 거기에 1/3 단위를 더한 형태로 표기되었지만, 나샤와 미키를 포함한 인류가 크리퍼와 공생하며 휴먼 프린터를 폭파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숫자가 아니라 'spring'이라고 표시된다. 이 두 요소가 공통적으로 미키의 입장과 처지, 생각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의 투영

이동진 평론가는 본 작품을 동화에 빗대어 감상을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키 17>은 현실을 소재로 삼은 우화적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감독은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나 자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미키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건설 현장이나 고된 업무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가 불의의 사고로 쓰러지더라도 그 자리는 다음 노동자에 의해 대체된다. 작품 내에서는 같은 미키로 대체되었지만, 현실에선 김 씨가 사고로 부상을 입으면 이 씨, 박 씨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머리가 얼얼했다. 이는 마냥 허구의 세상처럼 보였던 미키의 세상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구체적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미키의 존재가 실험실의 개구리와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 또한 비교적 직시적인 비유이다. 작품 내에서 그는 말 그대로 실험실의 동물처럼 온갖 악조건에 내던져진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진심 어린 동정을 보내는 이는 없다. 물론 과학자들이 일말의 동정을 표출하긴 하지만, 이는 그를 동등한 인류가 아닌 가여운 실험체로 상정한 상황에서의 감정이었다.


크리퍼와 인류의 입장 또한 서부 개척시대의 백인과 인디언의 처지를 빼닮았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는 양측 모두 인간의 외형과 유사하나, '봉준호'감독이 빚어낸 '크리퍼'는 이와 대척점을 걷는다. 하지만 상이한 외형 안에 담긴 메시지는 양측의 작품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되레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난 크리퍼의 외견은 상호 간의 간극을 더 크게 만들어 감정의 굴곡을 더 깊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감독의 선호

작품 전반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선호, 혹은 이전 작품들에서 등장했던 소재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연출한 장면도 있을 것이고, 무의식적 선호에 의해 선택한 소재들도 있었을 것이다.


크리퍼가 입을 벌리는 장면을 보면 감독의 <괴물> 영화에 등장하는 한강괴물의 갈라지는 입이 떠오른다. 작품에서 과학자들이 입는 노란색 옷, 크리퍼들에게 마비 가스를 뿌린다는 계획 또한 괴물이 연상되기도 한다. 척박한 설경에서 시작되는 영화의 첫 장면, 제한된 환경(탐사선 내부)에서 일어나는 계급 차이와 우매한 중간지도자의 모습은 감독의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작품 초반에 우주선 외부에서 방사선에 노출되다가 미키의 손이 잘리는 장면이 있는데, 설국열차의 초반부에 열차 외부로 팔을 내밀고 얼려서 깨뜨리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작품 초반에 지구에서 휴먼 프린팅 기술을 통해 살인을 저지른 '앨런 매니코바'라는 인물이 살고 있던 집은 <기생충>의 부잣집 저택과 닮아있었다. 감독의 작품인 <옥자>를 관람하지는 않았지만, 옥자에 등장하는 동물들과 크리퍼들 또한 일면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3. 마무리하며

뻔하게, 정석적으로 흘러가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다른 각도로, 긍정적으로 이상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감독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본 작품도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재들이 많아서 흥미로웠고, 기본적으로 연기나 영상미 또한 안정적이었다. 원작의 내용과는 상이하다고 하니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책으로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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