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해(玉海)
낯선 옥색의 바다는 자신을 마주한 이들을 현실로부터 잠시 이격 시켰다. 짠내를 들이켜며 물빛을 바라보던 이현 또한 현실보다 아주 약간 높게 떠올랐다. 비가 내리는 겨울의 바다는 독야청청(獨也靑靑)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고, 피어올랐던 생경함이 사그라들 때 즈음 이현은 카메라를 들어 그 순간을 사각의 앵글에 붙들어냈다. 하늘에선 소나기를 머금은 회색빛 구름이 응어리처럼 맺혀있었다.
이현이 무너져 내린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만큼 견고하진 못했고, 한 조각이 빠져나간 마음은 하릴없이 스러졌다. 이야기의 종장은 생각보다 허망했는데, 여느 날처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 그들은 나지막이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다. 숱한 정황과 심경은 그들에게 경종을 몇 번이고 울렸었지만, 적어도 이현은 이에 대해 실눈을 뜬 채로 진실을 밀어내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 손짓에게 밀려오는 파고를 온전히 막아낼 재간은 사실 없었다는 사실을 이현은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손틈으로 새어 나오는 감정의 물결을 목도하던 이현의 눈은 어느새 그 물결에 자신의 속내를 실어 보내고 있을 따름이었다.
양껏 눈물을 흘려보낸 이현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녀를 맞이하는 듯 장식장 속의 카메라가 이현을 응시했다. 자신의 덩치만 한 눈을 달고 있는 직사각의 상자는 굽이치며 흐르던 이현의 감정을 빨아들였다. 사진이란 흐르는 시간을 분절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매개체였기에 그녀는 시간을 잘라낼 도끼로써 카메라를 잡아들었다. 작금의 감정을 잠시라도 잘라내고자, 막간을 만들어내고자.
카메라를 손에 쥔 이현은 자석에 끌리듯 의자에 앉아 비행기표를 손과 눈으로 좇았다. 이런저런 핑계와 사정으로 그간 가보지 못했던 장소들을 훑던 그녀의 시선은 제주도에 멈추었다. 그렇게 그리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그녀는 제주도에 발을 디뎠다. 이전 같았다면(물론 그런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시간 단위로 계획을 짜서 찾아왔어야만 할 장소에 그녀는 홀로 오롯이 서있었다. 외부와 내부에서 그녀를 재촉하는 존재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렌터카를 타고 흐르던 이현이 멈춰 선 곳에선 낯선 옥색의 바다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깊고 진한 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