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소의 입꼬리_01

by 김주렁

감정이 비워진 방은 냉골이었다. 손톱달이 박힌 쪽빛 하늘은 침대 위에 몸을 뉘인 주연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여러 갈래 소리와 빛에 붙잡혔던 그녀의 하루는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번잡함에서 풀려난 주연은 미색(米色) 천장에 다시금 상념을 수놓았다. 생은 어디에서 떠오르고 흘러가는지에 대한 고민과 당장 내일 점심엔 냉장고에서 어떤 반찬을 꺼내먹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와류(渦流)가 되어 그녀의 머릿속에서 굽이치고 있었다.


오전 나절의 식은 공기와 몇 갈래 햇발에 주연은 눈을 떴다. 안락하고 고요한 토요일이었다. 날카로운 시계 소리에 베이듯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주말은 제법 은혜로운 때였다. 연분홍빛 이불을 개킨 주연은 바닥에 발을 내디디었고, 오롯한 그녀의 집 또한 옅은 숨을 내쉬며 깨어났다. 뒤이어 커피머신이 온수를 뿜어내는 소리가 오늘의 적막을 깼다. 주연은 아직 입을 떼지 않은 채였고, 커피머신과 개수대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수저 하나와 젓가락 두 짝, 접시와 밥그릇 또한 그녀를 응시했다. 평일 저녁의 잔재들이었다. 잠시간의 승자 없는 눈 맞춤 후에 주연은 커피잔을 들고 식탁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 있는 토스터기에 식빵을 넣고 나서 주연은 의자에 앉았다. 마뜩한 계획이라고는 없는 토요일에 대해 흡족해하며 커피를 마시던 주연은 튀어 오르는 식빵 소리에 흠칫 놀랐다.

'분명 알고 있었는데...'

또 당했다는 생각에 토스터기를 약간 찡그린 눈으로 하릴없이 바라보던 주연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옅게 저으며 빵을 집어 들었다. 식빵 가루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한 손엔 접시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식빵을 들어 몇 입을 먹고 놓기를 반복했다. 수 차례의 저작운동 후에야 주연은 온전히 잠의 세계에서 벗어나 하루에 안착할 수 있었다.


주연의 머릿속엔 그제야 간밤의 고민들이 미약하게 피어올랐다. 물론 대부분은 고민이 무익한 질문들이었지만, 요 몇 달간 그녀를 지지부진하게 누르고 있는 하나의 질문만큼은 갈고리를 벼르고 그녀에게서 쉽사리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우문이요, 또 누군가에겐 복에 겨운 소리처럼 보이겠지만 주연은 이 질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홀로 잘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행복에도 대길과 대흉이 있다면 주연은 소길 어드메에 놓여있다고 자평하는 사람이었다. 불행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찬란한 광채를 내비칠 수는 없는 그런 지점 말이다. 지금까지 그녀는 이런 적당한 행복과 일상에 잘 녹아들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지만, 어느 날 문득 이 행복이 미약한 독이 되어 자신을 깎아내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작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한 가닥의 의문은 발아하여 한 그루 나무가 되었고, 이제는 마음으로의 양분을 가리는 차양막이 되려 하고 있었다. 마음의 음지엔 이끼가 자랄까? 이끼는 무용한가? 한 번 피어오른 생각은 하염없이 그녀를 파고들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엔 식빵 부스러기와 마른 커피가 남겨져있었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주연은 널브러진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고, 물에 담긴 그릇들을 닦아내고, 그 후엔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분리수거함에 모았다. 재빠르지 않아도 될 토요일에 유영하듯 움직이던 그녀를 대신하여 시침과 분침이 한껏 날래게 움직였고, 어느덧 시간은 정오를 넘어 두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침대에 걸터누워 인터넷과 SNS를 맴돌던 주연은 돌연 한 영화 포스터에 시선을 빼앗겼다. <노트북>이라는 영화였다. 처음 보게 되었던 이유는 대학교 교양 수업 자료였기 때문이었지만, 그 후로도 종종 홀연히 마음을 빼앗겨 다시 찾아보곤 했던 작품이었다. 터질 것 같은 청춘의 사랑뿐이라면 이 작품 외에도 인상 깊었던 작품들이 더러 있었지만, 기억과 감정이 치매로 인해 사그라드는 노년에 사랑을 붙잡는 모습은 말 그대로 몇 곱절은 큰 울림을 전해주곤 했다. 함께 걸어 나가는 인생은 다시금 주연의 마음을 지긋이 쥐었다가 놓았다. 풀려나온 숨이 코에서 흘러나와 침대맡에 낮게 깔렸다. 방안의 서늘한 공기가 숨이 비워진 자리로 향했다.


미소(微笑), 한자 그대로 풀어내자면 '작은 웃음'이다. 주연의 만면에는 미소가 옅게 피어있지만, 그 입꼬리는 쉬이 요동치지 않는다. 이따금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약간 올라갔다가도 다시금 득달같이 제 자리로 향한다. 이대로 입꼬리가 흔들리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것일지, 주연은 앞으로도 치열하고도 지지부진한 고민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납득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 멈춰 설 수 있을 때까지. 아마도 멈춰 설 수 없을 고민은 이미 완행열차에 실려 차창에 턱을 괸 채 느린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