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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까마귀는 주인을 고르지 않는다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자는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by 김주렁

0. 들어가기에 앞서

<까마귀는 주인을 고르지 않는다>는 아베 치사토(阿部智里)의 소설 <야타가라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여 '스튜디오 피에로'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총 20화로 구성된 작품이다.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까마귀인 '야타가라스' 일족 내에서 벌어지는 알력다툼과 중상모략이 주를 이루는 판타지 장르의 시대극이며, 아래에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각 개별 사건에 대한 감상보다는 순간순간 느꼈던 감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1. 배경 및 주요 인물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야마우치'는 야타가라스들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이며, 중앙의 '종가'와 4개의 령(동령, 서령, 남령, 북령)으로 이루어진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다. 이 야마우치에 살고 있는 모든 야타가라스를 다스리는 상징적 존재이자 실권을 쥔 황제가 바로 '금오'이다. 선대 금오의 차남인 '와카미야'가 금오의 자리에 오르게 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게 된다.


이야기의 구심점이 와카미야라면, 실질적으로 사건을 이끌어나가는 주동인물은 북령 '타루히' 마을 향장의 차남 '유키야'이다. 그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북령에서 종가로 넘어와 와카미야를 보좌하는 근습 역할을 맡게 되며, 와카미야를 보좌하며 여러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며, 전반부는 와카미야가 금오에 오르며 비를 간택하는 과정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주로 다룬다. 후반부는 정체 모를 약과 연달아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단서와 원흉을 쫓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각기 다른 사건과 상황에 대해 다루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자체는 유사하다. 작품 내 등장하는 여러 사건과 인물들은 겉보기에는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종국에는 숨겨진 하나의 진실을 향해 수렴해 나간다. 산재되어 있던 여러 복선이 밝혀지고, 내면에 숨겨진 진상이 드러나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본 작품의 강점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시대극이라는 점과 서사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며 <약사의 혼잣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2. 의도적으로 진실을 수면 아래에 감춘다. 암약하는 까마귀.

본 작품에서는 자신의 본심이나 의도를 타인에게 감추기 위한 여러 방법이 활용된다. 그리고 이 방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존재가 바로 와카미야이다. 그는 세간에서 보기에는 정사에 관심이 없고 유곽에 드나들며 비 간택에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허울뿐인 모습으로 비치며, 이는 장남인 '나츠카'의 행동력, 인망과의 대비를 통해 더욱 강조된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거취와 목적을 숨긴 채 암약하며 여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눈속임이었다. 그는 허울뿐인 세간의 평판에 집착하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안일하게만 보였던 와카미야는 실제로는 철저한 실리주의적 인물이었고, 명석해 보이는 정적보다 아둔해 보이는 인물이 상대방을 안심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차린 채였다. 이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자들은 진실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방식 자체가 새롭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위해서는 세간의 평판이나 불필요한 관행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와카미야의 인물상이 꽤나 인상 깊었다. 이 견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이 와카미야가 선대 금오인 자신의 부친을 옥좌에서 끌어내리는 장면이었다. 관습이나 절차가 아닌, 야마우치의 번영을 이뤄내기 위한 철저한 목적 기반의 행동이 인상 깊었다.


작품 초반부에 등장하는 나츠카와 '나츠카파'에 대한 서사도 인상 깊었다. 명석하고 인망이 두터웠던 나츠카는 이미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을 별도로 모아 활동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아둔해 보이는 와카미야보다는 명석한 장남인 나츠카가 조정을 지배하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금오에 오른 와카미야를 시기하고 증오하고 있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달랐다. 나츠카는 와카미야의 안녕을 소망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와카미야에 반하는 인물들을 모아 일종의 억제와 관리를 하고 있던 일종의 이중간첩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츠카의 심복인 '로콘' 또한 초반에는 우락부락한 외견과 함께 자신의 뜻대로 나츠카를 조종하여 이권을 손에 쥐고자 하는 인물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나츠카를 위하는 인물이었고 매번 필요한 수를 잘 선택하는 명석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품의 후반부에 삭왕과 나츠카의 갈등 과정에서 더 이상의 피해를 막고자 나츠카를 회견장에서 끌어내는 모습 또한 로콘이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판단력을 지닌 인물임을 짧고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작품 전반부의 가장 큰 사건이었던 비 간택 과정에서도 위와 같은 이중적 인물상이 반복적으로 활용된다. 와카미야의 비로 간택되기 위해 4개의 령에서는 비 후보를 한 명씩 종가의 앵화궁으로 보냈으며, 무인의 북가에서는 '시라타마'를, 악사의 동가에서는 '아세비'를, 상인의 남가에서는 '하마유우', 장인의 서가에서는 '마스호노스스키'를 종가로 보낸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역시 아세비였다. 처음부터 일종의 멸칭을 받은 채 입궁한 아세비는 다른 비 후보들과는 달리 유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런 그녀는 와카미야의 동생인 '후지나미'를 포함하여 주변의 여러 인물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어릴 적 마주쳤던 와카미야를 사모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권력과 이권을 위한 전략적 선택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존재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한 눈속임이었고, 어찌 보면 와카미야와 행동양식 자체가 동일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후지나미와 자신을 연모했던 시종들을 거리낌 없이 장기짝으로 사용하고 버린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에도 그녀는 속죄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죄책감도 전혀 느끼지 못하며 타인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모습을 보여준다. 나약한 피해자의 행색에 숨겨진 악의가 강렬했다. 자신을 애절하게 바라보는 후지나미를 외면하는 아세비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3. 그 외 인상 깊었던 요소들

작품을 감상하며 기억에 남았던 부분들을 아래에 두서없이 남긴다.

작품의 제목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주인을 고른다는 표현은 선택할 권리가 피지배층에 있음을 말하겠지만, 본 작품의 제목은 주인을 고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피지배층이 아닌 지배층, 즉 금오 자신이 타인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권좌에 올라 야마우치와 야타가라스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하는 의지가 표명된 문장이었을 것이다.

주인을 고른다는 의미가 작중 한 번 더 활용되는데, 이는 나츠카파의 충신 '아츠후사'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나츠카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며, 그를 금오의 자리에 올려놓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로콘이 나츠카를 내치고 권력을 손에 쥐려 한다고 억측하며, 이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일념하에 와카미야에게 찾아와 도움을 구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츠후사가 충신, 로콘이 역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아츠후사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나츠카가 금오가 되기를 바랐고, 그렇기에 독단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자신이 와카미야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실제로 나츠카는 와카미야를 증오하지 않았고, 되레 그를 뒤에서 지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진실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아츠후사는 결국 체포당한다. 이후 루콘은 일련의 이유로 와카미야를 보좌해야 한다는 결심이 흔들리고 있던 유키야를 그와 대면시키는데, 아츠후사는 나츠카를 주인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건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는 말 그대로 주인을 골라버렸고, 이는 본 작품의 제목과는 상반된 행동이었다. 어찌 보면 그는 나츠카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나 그 정도가 지나쳤던 신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일면으로는 아츠후사 자신이 성공을 위해 나츠카를 높은 자리로 올려놓고자 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도 그는 출신에 대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돌아온 유키야에게 와카미야는 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츠카는 주인을 골랐지만, 와카미야는 유키야를 골랐다. 주인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자를 주인이 고른 것이다. 이런 여러 측면에서 유키야와 아츠후사는 서로의 안티테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와카미야가 비를 간택하는 과정 또한 인상 깊다. 일련의 이유로 원치 않는 등전을 한 비 후보들을 마주한 와카미야는 다시 한번 자신들이 직접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가문을 위한 무조건적 자기희생을 상정한 채 진정한 사랑도 버린 채 비 후보 자리에 선 시라타마에게 와카미야는 그것이 희생이 아니라 선택을 피한 태만이라고 말한다. 북가의 '카즈미'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시라타마는 사실이 아님에도 뱃속의 카즈미의 아이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와카미야의 질문에 무너지며 결국 비 후보 자리를 포기하고 카즈미를 택한다. 그녀 입장에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내린 첫 번째 선택이었다. 그렇게 북가의 비 후보는 행복을 찾아 떠났다. 서가의 후보였던 마스호노스스키는 사명감과 명예, 긍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기에 그저 기다리는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와카미야의 말에 분노한다. 와카미야는 그녀에게 긍지를 스스로 꺾으라고 종용하지만,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그럴 수 없는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고 스스로 머리를 자른 채 산신을 섬기기로 결정한다. 결국 서가의 후보 또한 와카미야에 의해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내리게 된다. 정작 비 후보가 있는 앵화궁에 찾아가지 않았으면서도 각 인물들에 대해 정확한 분석을 내린 와카미야의 능력이 강조되는 장면이기도 했다.

작품의 종반부에 등장하는 '인간'의 존재가 제법 충격적이었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까마귀와 원숭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바깥에 문명사회의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은 야타가라스의 시선에 초점과 대전제가 고정되어 있던 관객들에겐 제법 큰 충격이었다. 야타가라스를 닮은 인간인지, 인간을 닮은 야타가라스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들의 근원적인 고민을 잘 보여주었다. 야마우치의 외부에서 보이는 불빛이었던 '시라누이'가 실제로는 문명사회의 빌딩과 전기에서 나오는 불빛이었음이 나타나는 종반부의 장면이 인상 깊다. 외부의 이야기라는 서적에 자동차와 건물 등 문명사회의 사물들이 그려진 그림이 등장하는 것 또한 제4의 벽이 깨지는 듯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판타지 장르뿐이었다면 이렇게 큰 충격은 없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시대극의 외견을 띤 작품이었기에 이 반전이 크게 다가왔다.


4. 마무리하며

서사를 쌓아 올리는 과정, 각 인물들의 역할과 배치, 전반적인 흐름과 복선 회수 등 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추리, 두뇌싸움, 이권 다툼 등에 흥미가 있는 편이라면 관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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