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렌트(Rent)

서로에게 사랑을 아낌없이 빌리고 빌려주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

by 김주렁

2026년 1월 13일에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뮤지컬 <렌트(Rent)>를 보고 왔다. 렌트는 1996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조너선 라슨'의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00년 초연 이후 열 번째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자유로움과 치기, 고통과 상실이 뒤섞인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들을 아래에 남긴다.


본 작품은 서사와 표현 방식 측면에서 중첩을 반복적으로 활용한다. 마크, 로저, 콜린, 엔젤, 미미, 모린, 조앤 총 8명의 인물들이 펼쳐나가는 이야기는 서로의 과거와 현재, 우정과 사랑, 계층과 성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얽혀있다. 이와 같은 복잡도는 자칫 작품을 난해하게 하기 쉽지만, 렌트는 이 본인만의 특징을 적절히 활용하여 다양한 각도로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이 서사적 특징과 함께 맞물려 움직이는 또 다른 특징이 바로 노래와 무대의 연출이었다. 마치 밴드의 즉흥 연주를 보는 것처럼, 군중 사이에 섞인 다양한 군상을 한눈에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품에는 여러 인물들의 상황과 장면이 동시다발적으로 제시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는 관객의 시선을 강하게 유도하지 않고, 여러 처지와 입장을 지닌 인물들 사이에서 관객 자신이 원하는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빈부의 격차, 직업의 차이, 건강, 사랑의 방식과 대상에 대한 차이 등 렌트에는 사회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양측이 혼재되어 등장하며, 관객은 이를 바라보며 삶이란 모두에게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구태여 곱게 빚어낸 매끈한 면이 아닌, 우리가 살을 맞대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거친 면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관객들에게 보다 가까운 거리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런 감정과 처지의 낙차를 보다 극명하게 해주는 것이 작품의 주된 시간적 배경인 크리스마스이브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정은 대체로 상대적인 존재이기에, 화려한 불빛과 장식, 분위기에 고양된 이들의 감정과 평소처럼, 어쩌면 평소보다 조금 더 어려운 계절을 보내고 있을 이들의 낙폭은 평시보다 더 커졌을 것이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이는 거리의 풍경과 하얀 마약 가루에 홀려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 사이의 거리는 다른 어느 때보다 멀어졌을 것이다. 기쁨과 행복이 클수록 상실과 결핍도 덩달아 커지게 되는 이 가혹한 진실은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상황적 배경을 통해 배가되었다.


본 작품에는 예술에서 쉬이 터부시될 수 있는 표현이나 상황들이 비교적 날것 그대로 묘사되기도 한다. 성적 묘사, 마약, 동성애 등 작중 인물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에둘러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단어와 표현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관객의 입장에서도 넘겨짚은 섣부른 동정과 연민보다는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을 건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전반적으로는 분위기를 보다 선명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1막과 2막의 분위기가 다소 상이했다. 기본적으로 갈등과 다툼, 역경과 고난을 겪으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했지만, 1막에서는 삶의 충만한 순간의 감정에 대한 발산의 느낌이 강했고, 2막에서는 엔젤과 미미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슬픔과 상실, 그리고 이를 추스르며 앞으로 나아가며 마음을 정돈하는 수렴의 느낌이 더 강했다. 각기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 구성이 좋기도 했고, 즐겁고 행복하게만 들렸던 곡의 변주로 엔젤의 상실을 울부짖는 노래가 등장한 순간도 인상 깊었다.


충만이 아닌 결핍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은 슬프게도 강했다. 서로의 아픔(에이즈)을 알고 나서 마음의 문을 연 로저와 미미, 서로에 대한 불만이 명확하면서도 이를 상회하는 마음의 크기를 가지고 있기에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모린과 조엔의 사랑은 불완전한 면모가 있었기에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이 두 커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갈등이 적었던, 가장 순애에 가까웠던 엔젤과 콜린의 사랑은 엔젤의 죽음으로 인해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콜린은 엔젤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며, 마크와 로저를 비롯한 이들이 다투려고 할 때에도 엔젤의 사랑을 설파한다. 간절함과 애절함이 진했던 이들이었다.


그렇지만 작품이 막을 내린 순간 가장 연민이 갔던 인물은 마크였다. 말 그대로 희로애락의 모든 순간들을 함께 했던 이들이 하나둘 모였다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크의 인생은 그가 손에서 놓지 않는 카메라와 닮아있었다. 다른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의 사랑을 하며 관계를 이어갔지만, 마크는 이들의 한 걸음 뒤에서 함께하며 어느 한 인물과 그렇게까지 깊게 얽히지는 못했다. 마크가 이야기의 화자이자 해설 역할로 등장하는 것 또한 행복했던 과거를 톺는 그의 슬픈 회고록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감정의 낙차가 위아래로 크게 요동치는 인생과 고요하게 중심에서 흔들리는 인생 사이에서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순간이나마 빛났던 이들의 순간을 함께했던 마크의 입장에서는 상실과 공허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쓰디쓴 슬픔을 자양분 삼아, 피어오르는 사랑의 손을 맞잡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렌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상실과 고통을 넘어, 귀하게 다가올 시간들을 향해 지금 여기에서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거칠고 투박하게, 하지만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인상 깊었다. 물론 노래 자체도 훌륭하다. 관람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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