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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Apr 13. 2022

정공법이 아닌, 마이너한 방식들에 대하여

주류가 아닌 방식들은 어떻게 생존해 나가는지에 대한 여러 생각들

문장과 단어에도 어느 정도 TPO가 있기 마련이다.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더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표현은 달라지게 된다.

명일 석식이 예정되어 있으니, 일정 확인하시어 참석 부탁드립니다. 6시 이내에 도착 부탁드립니다.

내일 저녁 6시에 먹을 거니까 늦지 말고 나와!


상황 자체는 같더라도 그 표현 방식과 느낌이 매우 다르다. 특히 회사의 용어는 내용이 아니고 형식만 보더라도 구분이 될 정도이다.


문어체인지 구어체인지, 소설인지 시조나 노래인지 등 글의 형태에 따라서도 문장은 그 형태를 달리한다. 시조의 율격, 글자 수를 정해놓고 쓰는 표어는 여기에 더해 길이까지 제한한 경우이다.


율격 : 장단, 고저, 발음 등 짜임새가 비슷한 말의 토막을 이어 붙이는 문학창작의 한 방식을 가리키는 국문학 용어.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표어 하면 생각나는 4글자 + 4글자의 구성인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이렇게 각 조건에 따라 글이 분기하게 된 것은 도태와 자연선택에 기인했을 것이다. 그 형태와 방식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주류의 방식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런 성공한 방식이 클리셰로 넘어가게 되면 딜레마가 생긴다. 아무리 효과적인 방식이라도 독자가 지닌 어느 정도의 역치를 넘어서면 감흥을 주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정석적인 방향에서 벗어난 사례로 생각되는 것은 이상 작가의 글이다. 내용 자체가 난해한 것도 있으나, 형식 자체가 파괴된 것이 주는 인상이 깊었다. 현실 모방의 세밀화에서 추상화로 넘어가는 시점을 보는 느낌이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이상, 오감도 시제 1호)
이상, 오감도 시제 4호


비교적 최근 시점에서 생각해보자면, 자유도 측면에서 이점도 있었고 잘 활용해냈다고 생각되는 것이 초기의 인터넷 소설인 것 같다. 격식과 문체 등 정석적인 방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써 내려가는 인터넷 소설들은 정공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클리셰 비틀기로서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언제나 능사는 아니다. 전공으로 글을 배운 사람은 얽매이기 싫다고 하더라도 무의식 중에 정답을 알게 된다. 통계적으로 옳게 된 글에 대한 레퍼런스를 많이 접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전체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 통계적으로 그럴 수 있겠다는 정도이다)


너무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나, 아래와 같은 투명 드래의 사례도 기념비적인 파괴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크아아아아"

드래곤중에서도 최강의 투명드래곤이 울부짓었다
투명드래곤은 졸라짱쎄서 드래곤중에서 최강이엇다
신이나 마족도 이겼따 다덤벼도 이겼따 투명드래곤은
새상에서 하나였다 어쨌든 걔가 울부짓었다

"으악 제기랄 도망가자"

발록들이 도망갔다 투명드래곤이 짱이었따
그래서 발록들은 도망간 것이다

꼐속

- 전설의 시작. 투명드래곤 제1화 전문(全文).


위 인터넷 초기 세대에서 스마트폰 세대로 넘어오게 되면서 생겨난 또다른 혼종은 채팅형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채팅창을 그대로 캡쳐한 듯한 형태로 쓰이는 소설은 내용은 고사하더라도 그 형식이 흥미롭다. 사실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해설이나 배경 설명 없이 대화로 쭉 이어지는 연극 같은 느낌이 아닐까 한다.


네이버에 톡소설 검색 시 나오는 화면. 검색하면서 처음 알았는데 리디북스에서 위 형태로 연재하여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생각들에 빠지게 된 것은 출근하면서 윤종신 씨의 노래를 들으면서였다. 멋지고 화려한 상황보다는 생활 감 있는 쿰쿰한 느낌의 가사가 많은 윤종신 씨의 노래를 듣다 보면 정답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시작에 비해 글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 느낌도 있다.)


이촌동 그 길 아직도 지날 땐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해요
밤의 공원도 그 햄버거 집도
지하상가 그 덮밥집도

윤종신, 1월에서 6월까지


지하상가 덮밥집이라는 단어가 이런 애절한 노래에 어울릴까 싶었지만, 왠지 모를 쿰쿰한 분위기와 실제로 있을법한 상황에 몰입이 더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느낌의 가사들이 많은 가수들이 10cm와 장기하인 것 같다. 소위 말해 짠내 나는 가사들이 많은데, 현학적이거나 아름다운 내용은 아니지만 삶에 더 가까이 맞닿아있다는 느낌이다.


이부자리를 치우다 너의 양말 한 짝이 나와서
갈아 신던 그 모습이 내가 그리워져 운 게 아니고
보일러가 고장 나서 울지
책상 서랍을 비우다 니가 먹던 감기약을 보곤
환절기마다 아프던 니가 걱정돼서 운 게 아니고

10cm, 그게 아니고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마리쯤 쓱 지나가도

장기하, 싸구려 커피


비단 글이나 그림, 영상 등 한 분야의 상황만은 아니다. 초기에는 기술의 한계로 인해 단순하고 조악하게 시작하다가, 기술의 발전으로 정교한 모방을 꾀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이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의 반복이 되는 것 같다. 위에서 소개한 이상 작가 및 글의 형태들, 노래 가사들 뿐만 아니라 추상화나 해체주의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해체주의 건축가인 프랑크 게리의 작품.


그렇다고 무조건 이런 주류에서 벗어난 마이너 감성이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주류와 다르다는 것은 우선 안정적인 방식에서는 벗어난 것이며,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 때문이다.


고등래퍼2의 김하온. 공격적인 래핑과 가사가 주류였던 당시에 명상과 자아성찰의 평화로움을 무기로 크게 성공했다. 물론 실력이 뒷받침되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이와 같은 비주류의 방식은 타이밍과 유통기한이 중요한 것 같다. 아무리 새로운 방식이더라도 역치를 넘어서면 자극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아 뻔한 상황이네. 그러니까 여기선 이렇게 한 번 더 꼬겠지?'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 소재는 이미 어느 정도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다. 인터넷 상의 유행어가 TV에 나오면 보통 그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볼 수 있다. 그 정도면 이미 새로움과 놀라움이 모두 사라진 후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는 너무 원론적인 결론으로 귀결되었기는 하나, 위와 같은 다양한 사례를 찾아보는 것이 나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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