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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y 05. 2022

내 마음의 회귀식

괜찮은데 괜찮지 않아 지는 순간들.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겠다.

RPG 게임을 하는데 인터페이스도 안 보이고 스텟 창도 안 보이면 얼마나 답답할까? 내 HP가 얼마 남았는지, 현재 무슨 버프와 디버프가 걸려있는지, 앞으로는 무슨 스텟에 투자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게임이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지 상상도 하기 싫다. 심지어 한번 스텟을 찍고 나면 잘 찍은 건지 결과로 추론할 수밖에 없고 스텟 초기화권도 없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싶지만, 우리 일생이 이런 불친절한 게임이 아닐지 싶다.


물론 인류가 마냥 무기력하지는 않으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들도 없지만은 않다. 내 몸상태를 정량화할 수 있는 체성분 분석, 내 지식수준을 판가름하기 위한 시험과 자격증, 내 성격과 성향을 가늠하고자 하는 MBTI 등 나를 더 알아가기 위한 수단들이 속속들이 갖춰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의 심리, 특히 나 자신의 심리이다. 타인의 심리는 한 발치 떨어져서 나름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석이라도 해볼 수 있겠지만, 내 심리를 내가 조사해봐야 자기 최면과 무한루프에 갇히기 십상이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과 혼자 쉬는 것 중에서는 단연 후자라고 생각해왔다. 이는 대체로는 맞았으나, 이따금 함께 있으며 즐거움을 느끼는 타인들을 보면 왠지 모를 공허함에 잠긴다. '나는 분명히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라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또 다르더라는 말이다.


한 단계 더 생각해보니, 위의 의아한 감정에는 끊임없이 나를 속이는 내 머릿속 과정들이 있었던 것 같다. '대체로 혼자 있는 경우가 많으니, 너는 혼자 있는 쪽이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다.'라고 머릿속에서 자체 판단을 내려 끊임없이 나에게 암시를 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까지가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납득시키기 위한 2단계에 거친 암시였다면? 여기서부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적국에 침투한 간첩인 줄 알았으나 사실 이중간첩이었고, 사실은 이중간첩 인척 하는 간첩이었고... 하는 무한루프에 빠진 느낌이다. 애당초 내가 나를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가 너무 무리한 일이었을까?


위의 사례와는 조금 다르지만, 내가 나를 좀 더 능동적으로 암시에 빠지게 하는 조건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착하고 속 좋은 아이였다는 인식이 나를 역으로 휘감아, 무슨 나쁘거나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억지로 괜찮은 척하기도 하고 싫은 소리도 굉장히 못하는 편이다. 내가 나를 옥죄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점은 고치기가 쉽지 않다.


위와는 반대로, 나의 내면의 선택과 암시가 보이지만 이를 뛰어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나를 좋아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게 맞겠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이끌리는 것을 바로잡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이 경우에는 내가 의도하는 바는 알겠으나 의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로, 해결책을 잘 모르겠는 경우이다. 이성과 본능 중 어떤 것이 정답이냐는 물음은 결과로 확인할 수밖에 없어서 참 곤란하다.


아마도 나는 죽는 순간까지 나를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영리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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