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초기에 해외로 출장을 갔을 때, 'A'라는 나라에는 고성능의 비싼 청소기가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능이나 가격이 그 나라 시장에 적합하지 않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지만 정작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A 나라에는 가정부 문화가 기본적으로 자리 잡아있기 때문에 굳이 비싼 청소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해석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Customer와 User가 다른 경우라고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세상을 단편적이고 얕게 보면 안 되겠다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었다. 이때의 기억을 발판 삼아 이해의 수준과 깊이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 보고자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대체로 '목적성에 따른 취사선택에 의한 이해'를 말한다. 일례로 '철이 자석에 붙는다.'라는 문장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때는 이해하고자 하는 주체의 목적성에 따라 이해의 수준이 달라지게 된다. 냉장고 벽에 자석을 붙이고 싶은 아이는 표면적인 현상, 즉 철과 자석이 붙는다는 사실만을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이를 기계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개발자나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각자 필요한 깊이가 달라진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단순한 현상 외에 자석의 스펙 및 종류별 강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알아야만 한다. 그것을 알아야만 본인이 개발하는 제품의 목적성에 맞는 자석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이 자력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라고 한다면, 자력의 발생 원리부터 물체 사이의 원자 단위까지의 물성과 상호작용까지 알아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이해라는 동일한 단어는 각자의 목적에 따라 그 깊이와 정도가 달라지게 된다.
우리의 일반적인 삶은 위에서 말한 순수학문 수준의 지식까지 요구하지는 않는다. 대다수의 일상생활과 업무는 순수과학보다는 응용과 활용 수준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깊이의 이해가 우리 삶에 필요한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개개인이 가진 Resource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과부하를 막고 최적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Bordering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데아의 원본을 세상의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데아의 그림자를 어느 수준의 해상도로 바라보면 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이해하더라도 그 수준을 정하기란 쉽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최적점을 찾아내는 과정은 고달프기 마련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어느 수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될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면 세상살이가 굉장히 수월해질 것이다. 정확한 답을 알 수 없는 우리는 필요한 이해의 수준에서 Margin을 고려하여 과(過) 이해할 수밖에 없고, 이는 투자비용 측면에서는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관록 있는 Senior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식의 양도 물론 많겠지만, 다양한 상황을 겪은 선배 입장에서 상황을 해석해준다면 불필요한 노력이 줄어들고 보다 최적에 가까운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대한 최적의 이해를 통해, 앞으로도 효율적이고 영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