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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Nov 27. 2022

등산이 가져다주는 것들

등산을 다녀와서 써보는 이런저런 생각들

0. 간헐적 등산 다녀와서


지난 10월에 경남 창녕에 있는 화왕산을 다녀왔다. 난이도 별로 1~3코스가 있다고 하여 등산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1코스를, 하산은 1코스보다는 부담이 덜한 3코스를 골랐다. 일정과 체력과 날씨와 마음가짐이 모두 맞아야 등산을 가겠다는 자체적 기준 의해, 등산을 가는 것은 많아봐야 일 년에 한두 번인 것 같다. 이런 간헐적인 등산 빈도 덕택에 매번 갈 때마다 힘들지만, 막상 정상에 오르고 보면 성취감도 있고 기분도 좋다.

2022년 10월 22일, 화왕산

하산하면서 숨을 돌리고 나니 이런저런 방향으로 생각이 뻗쳐나갔다. 나는 개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등산은 좋아하는 편인데, 막상 그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를 돌아보는 것은 어렵지만 흥미로운 일이기에 등산을 좋아하는 현상에 대한 이유를 나름 역산하여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억새로 뒤덮인 풍경이 황홀했다.


1. 등산(登山)이라는 단어


등산의 의미에 대한 고민에 앞서, 등산이라는 행위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등산(登山)은 '오를 등 + 메 산'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성의 단어이며, 말 그대로 산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헬기를 타고 정상에 내리는 것을 등산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대화하는 통상적인 등산은 자력으로 산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꼭 정상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으며, 본인의 능력과 여건에 따라 산 중턱까지만 오르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등산은 필연적으로 하산을 수반한다. 올라간 만큼 내려와야 하는 것은 응당하다. 등산의 목적지는 정상이지만, 우리의 삶에서 보면 정상은 등산 + 하산 과정의 경유지이기도 하니 말이다. 친구에게 '나 어제 등산 갔다 왔어'라고 말할 때의 등산은 문맥적으로 등산 + 하산의 의미를 내포한다.


2.  등산의 목적과 의도


사람들은 왜 등산을 하게 되었을까? 물론 시작점은 생존이었을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재료들을 수렵/채집하는 것, 다른 장소로 이동을 위해 불가피하게 산을 거쳐 이동하는 것이 산에 오르는 행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이때의 등산은 산을 오르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높고 험준한 곳을 거쳐가야 한다는 것에 가까웠을 것이다.


어느 정도 생존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고 난 인류는 삶의 새로운 목표이자 가치관을 찾아내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산을 오르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의미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을 등반하는 데에서 오는 성취감과 기쁨, 남들보다 높은 곳에 서있다는 우월감, 탁 트인 시야 및 경치 등 등산의 결과물에서 오는 가치도 있었을 것이며, 힘든 등산 과정을 이겨내고 완등 해냈다는 등산 과정이 주는 만족감도 있었을 것이다. 등산이라는 의미도 여기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등산도 행위 자체만 놓고 보면 산을 오르는 것이지만, 등산이 그 행위만으로 의미를 갖게 되면서 등산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완성되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3. 등산의 구성요소. 대체제와의 비교


이번에는 등산이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등산의 전체 여정을 고민해보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등산 준비 → 산으로 이동 → 등산 → 목표 장소에 도달 → 하산 → 집으로 복귀

등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산과 경로, 일정을 정하고 필요한 장비 및 비품을 준비한다. 산으로 이동한 후에는 걸어서 산을 오르며, 목표 장소에 도착하여 경치를 둘러보기도 하고 챙겨간 음식이 있다면 먹기도 한다. 재정비를 마친 후 다시 하산하며 이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다.


각각의 요소들만 놓고 보면 등산이 다른 행위들과 비교해서 독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등산 및 하산 과정에서의 운동량은 다른 운동을 하면서도 채울 수 있고, 높은 곳에서의 경치는 꼭 자력으로 등반하지 않더라도 높은 전망대에 오르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등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등산은 각 구성요소들이 개별적으로 주는 매력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각 행위들이 맞물려 연계되면서 내는 시너지 효과도 크다고 생각한다. 개별 행위들만 놓고 보자면 위처럼 대체제가 있지만, 전 과정을 하나로 합해서 보았을 때 등산만이 가진 매력이 발산된다.


4. 등산이 가져다주는 것들


좋은 경치는 다양한 방법으로 얻어낼 수 있지만, 등산을 통해 얻어낸 경치는 나의 노력을 통해 얻어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일상생활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의 체력소모와 심적 부담을 이겨내고 정상에 올라서서 보는 경치는 황홀하다. 헐떡거리며 심박수가 높은 상태에서 바라본 경치가 일종의 흔들 다리 효과처럼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등산의 또 다른 좋은 점은 성취의 정도가 직관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아서, 10의 노력을 들였을 때와 50의 노력을 들였을 때의 결과물이 선형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했는데 나는 왜 성공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자책을 하게 되는 것도 노력과 보상이 정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등산의 노력과 보상은 직관적이다.  물리적으로 올라가는 높이와 심리적 성취감이 올라가는 방향이 선형적이다. 물론 전문적인 장비가 없다면 몇 퍼센트나 올라왔는지 알기 쉽지는 않지만, 내가 한 걸음 내딛는 만큼 정상에 가까워진다는 그 인과관계는 직시적이다. 이런 직관적인 성취감도 등산이 주는 하나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 와서는 등산만이 가진 강점은 아니기는 하나, 높이 자체가 주는 우월감도 어느 정도는 존재했을 것이다. 피라미드, 고대 신전 등 건축적으로도 높이는 그곳에 올라선 자의 권위를 보여주었고, 영상적으로도 하이앵글과 로우앵글은 관객에게 작품 속 대상과의 상하관계를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에 와서는 고층 빌딩, 비행기 등을 통해서도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산에 오르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장 높은 조망권을 획득하는 방법이었을 테니 말이다.


5. 하산. 글을 마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글이었지만, 쓰다 보니 등산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더 깊고 기분 좋은 고민을 해볼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등산의 빈도를 조금은 더 늘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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