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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리 Oct 25. 2024

앙상한 이의 일일: 출근길 편

띵띵 딩딩딩~ 띵띵 딩딩딩~

차가운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신경질적으로 액정을 밀어내어 알람을 끈 후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5분은 더 잘 수 있다는 조급한 안도감으로 찰나의 선잠을 청한다. 다시금 몽롱하게 잠과 깸의 경계선에 닿을 무렵…

띵띵 딩딩딩~ 띵띵 딩딩딩~

또다시 날카로운 알람이 훼방을 놓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첫 알람 5분 뒤 두 번째 알람 소리. 그것은 더욱의 게으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음이다.


몸을 일으켜 습관처럼 쩝쩝, 목안에 맴도는 맛을 느낀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의 밤은 위산의 역류를 너무나 자유로이 허용하는 시간이어서, 그 밤을 지난 아침이면 입천장부터 목구멍 속까지 시큼한 맛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역류가 심한 날은 시큼함이 치아 자리까지 올라와 이가 시릴 때도 있다. 오늘은, 어디 보자……. 젠장. 왼쪽 어금니가 시릿시릿하다.


40kg을 겨우 넘는 왜소한 몸이지만, 거실 싱크대까지 걸어갈 때 느껴지는 체량은 딱 실제의 열 곱절 정도이다. 무거운(아니, 가벼운) 몸을 겨우 이끌고 느적 느적 싱크대에 다다라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입안을 헹구는 일이다. 밤새 부지런히 역류했을 내 입안의 부산물들을 모두 제거하고 싶다는 일종의 의식이자 의지이다.

‘뽀글뿌글뿌글’

한참 동안 입 속의 물을 세차게 흔든 뒤 싱크대에 뱉어낸다. 눈뜨자 느꼈던 불쾌함이 그 순간만큼은 깨끗이 씻겨 내려간다. 그리고는, 마치 식도염이 완치가 된 것 마냥의 청량함을 잠시 느낀다.


입 안을 정돈한 뒤, 미리 이유식 통에 덜어둔 야채죽을 냉장고에서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워 식탁에 앉는다. 아침밥을 굶자니 아침의 나는 너무 맥없고, 제대로 먹자니 아침의 위장은 너무 나약하다. 그래서 나의 적절한 조식을 위해 엄마는 나태하기를 포기했다. 몇 주에 한 번씩 커다란 들통에 야채죽을 끓여 이유식 통에 소분한 뒤 냉동실에 넣어 놓으신다. 200ml 이유식 통 기준으로 스무 개 정도. 그러고는 매일밤 하나씩 냉장실로 옮기신다. 옮겨진 야채죽은 아침이 되면 알맞게 녹아, 전자레인지에 1분을 데우기 딱 적절하다.

나는 아침마다 엄마의 사랑을 먹는다. 그것은 나의 앙상한 몸을 살 찌우기에는 턱없으나, 앙상한 마음을 채우기에는 퍽 넉넉하다.


어설픈 아침식사 후 머리를 동여매고 세안을 위해 화장실로 향한다. 칫솔머리에 치약을 얹기 전, 잠옷 상의를 가슴 아래까지 올려 뱃가죽을 확인한다. 지난 밤동안 더 앙상해지진 않았는지 아랫배, 배면, 옆구리까지 샅샅이도 살펴본다. 아마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텐데도, 뱃살에 가려지지 않아 선명한 골반뼈가 1cm는 더 돌출된 것 같다. 아무 쓸모도 없는 신체검사 뒤에 괜히 떫어진 기분으로 세안을 마친다.


세안 후 본격적으로 화장을 시작한다. 본디 화장이 귀찮아 약속이 없는 날이면 민낯으로 외출하는 경우가 많았다(코로나가 고마웠던 유일한 이유이기도). 그러나 35세의 몸무게가 겨우 11세의 평균으로 곤두박질친 이후로는 빠뜨리는 날 없이 얼굴에 생기를 얹는다.

아니, 병기를 가린다.

살이 참 골고루도 빠져서 얼굴 골격 어느 한 군데 푹신한 데가 없다. 눈두덩이도, 광대 아래 볼살도 도독하니 복스럽던 내 얼굴이 그립다. ‘화장품을 얹으니 얼굴살이 조금 더 두터워지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얼굴을 바지런히 두드린다.

갓 일어난 얼굴은 그야말로 산 송장이었는데, 화장을 하니까 그래도 사람 같기는 하네.


전날 미리 개어 둔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앙상한 어깨와 다리를 가려 줄 넉넉한 청바지와 후드티. 어젯밤엔 그래도 식사 후 아랫배가 두둑해서 바지가 알맞게 맞았는데, 아침이 되니 도로 헐렁하다.  바지의 허리춤을 골반에 겨우 걸쳐놓고 벨트의 힘을 빌려 출근 준비를 끝낸다. 그리고는 가족들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던져 놓고 집 밖을 나섰다.

혹여나 앙상한 내가 애처로울까, 괜히 씩씩한 척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지하철을 타고 회사까지 한 시간 남짓. 자리가 있는 길일은 몇 날 되지 않아 거의 매일을 두 발바닥에 의지한 채 출근한다. 오늘도 여지없이 만석이다.

‘철컹, 철컹, 슈욱-, 철컹, 철컹’

지하철이 산만하게 흔들리는 통에 몸이 가벼운 나는 유난히 더 헐렁거린다. 손잡이를 꽉 잡아야 다른 이의 출근길을 성가시게 하지 않을 수 있다.

바로 이 시점부터, 그날 하루의 역류가 다시 시작된다.


입 헹구기와 양지칠로 깨끗하게 정리됐던 입속에 다시금 신물이 올라온다. 아침에 먹은 것이라고는 야채죽 한 종지뿐이라 올라올 것도 없지 않나 싶은데. 입안에 맴도는 시큼함이 무척이나 신경 쓰인다. 오늘은 위산이 후두에까지 닿아서 마른기침도 함께 성가시다. 참으려 해도 자꾸만 새어 나오는 기침을 옷소매로 겨우 틀어막아 보지만 역부족이다. 그 순간부터 내가 소망하는 건 단 한 가지이다. 얼른 사무실에 도착해 물을 마시는 것. 그래서인지 하차한 후부터 내 발걸음은 누가 쫓아오는 양 분주하다. 당연히 누가 쫓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는 초조함은 내 발걸음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엇에 이리도 쫓기는 듯하는가 잠시 생각해 보니,

다름 아닌 내 안에 있는 역류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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