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일하던 직장의 근로 학생 하나가 점심시간마다 무엇엔가 열중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만지작 거리는 작고 귀여운 물건은 ‘다마고치’였다. 아직도 존재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던 귀여운 다마고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생생한 컬러가 덧입혀졌다는 것 빼곤 그 시절의 다마고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어디서 났냐고 물으니 자신의 친구가 일하는 팬시점에서 가져다주었다고 했다.
순간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나도 꼭 그 다마고치를 갖고 싶다는. 그래서 근로 학생에게 혹시 그 친구를 통해 구매하는 게 가능한 지 물어보았다. 고맙게도 근로 학생은 친구에게 다마고치를 하나 더 얻어서 내게 선물로 주었고, 나는 감사의 의미로 점심 식사를 대접했다. 드디어 나도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다마고치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다마고치를 그렇게까지 갖고 싶었던 것에는 잊지 못할 사연이 있다.
조그만 종이들이 스테이플러에 집혀 덕지덕지 붙어 있고, 그것을 뜯으면 경품을 받을 수 있는 ‘종이 뽑기판’을 기억하는가. 하교하는 초딩들을 사로잡는, 어린이들의 유일한 도박이었다. 99%는 꽝 또는 고작 엿 하나인 저 뽑기에 왜 몇 백 원씩을 거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그리 즐기지 않았었다(지금은 거의 매주 로또를 구입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 땡기던 게 땡기는 날이 있다. 12살의 나는 그날따라 종이 뽑기가 땡겼다. 어떠한 과정도 없이 홀리듯 문구점 아저씨에게 가서 100원을 지불했다. 1등 경품을 받을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인지 확인하긴 했지만 그런 행운이 내 것이 될 리 없기에 기대는 없었다. 조그만 손으로 무심한 듯 종이 하나를 툭 떼어내고 반 접힌 그것을 펼쳐 보니 선명하게 ‘수학’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종이뽑기판에는 다음과 같이 안내되어 있었다.
'1등 수학: 다마고치'
내 기억으로 당시 다마고치 가격이 3만 원가량 했는데, 100원짜리 뽑기로 3만 원을 벌었으니, 300%의 이익을 낸 셈이었다(주식을 이렇게 했다면 좋았겠다.). 내 이익만큼의 손해를 봐야 할 문구점 사장님도 누군가의 행운이 기뻤는지 선량한 축하를 건넸다. 근처에 있던 학생들도 신기하고 부러운 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띄었다. 그렇게 모두가 왁자지껄하게 누군가의 뜻하지 않은 행운을 즐거워하는 사이, 즐기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였다.
1등 경품 결과를 확인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가슴은 좋아서도, 놀라서도, 불안해서도 철렁한다. 너무나 갖고 싶었지만 비싸서 차마 부모님께 사달라고 하지 못했던 다마고치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좋았고, 그런 행운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것에 놀랐으며, 갑자기 찾아온 행운에 불안해졌다. 앞의 두 감정은 금방 휘발되고, 마지막 감정만 남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너무 어린 시절에 체득한 것일까. 3만 원짜리 다마고치의 행운이 300만 원어치의 불행을 안고 올 것만 같은 불안한 생각에 휩싸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너무 비싸서 가지지 못했던 이 것을 내가 가져도 되는 걸까, 엄마에게 혼나진 않을까, 다마고치만큼의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었던 듯하다.
얼떨결에 경품을 타 왔다. 쿠키 모양의 귀여운 접이식 다마고치였다. 불안을 이겨보고자 다마고치 게임에 열중했다. 하지만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심란한 마음이 겹겹이 쌓였다. 결국 12살의 어린아이는 무언가를 결심한 뒤, 무거우면서도 다급한 발걸음을 가지고 집 뒤 텃밭으로 향했다. 텃밭의 한쪽 끝 너머에 다소 험난한 논두렁이 있었고, 텃밭과 논두렁 사이에는 넝쿨 같은 풀들로 어설픈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아이의 발길은 울타리 앞에 도착했다. 그 앞에 다다르자, 어린아이는 제 힘이 허락하는 한 가장 크게 팔을 휘두르며 울타리 너머로 다마고치를 던졌다. 복잡하게 엉켜 버린 마음을, 행운을 던지는 것으로 풀어보고자 했다.
‘툭’
다마고치가 저 멀리 떨어졌다. 후- 이제 다 끝났다. 그런데 이상하다. 후련할 줄 알았던 나의 가슴에 불안이 가시고 슬픔이 차올랐다. 휘발됐던 기쁨이 다시 돌아와, 왜 내 자리가 없냐고 소리쳤다. 저 멀리 던져진 나의 다마고치가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우는 것 같았다. 아. 정말 미칠 지경이다. 12살의 나는 어찌 그리 단순하지 못했을까. 마음속으로 울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발아래 마른풀 소리만 자박자박 요란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어서, 울타리를 넘어 논두렁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꽤나 경사가 있던 논두렁이라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을 짚어야 했다. 자꾸만 발을 헛디뎌 손에 풀 가시들이 촘촘히 흔적을 남겼다. 돌부리에 걸려 무릎에 멍이 잔뜩이었다. 그래도 우선은, 끝까지 내려가는 데 성공했다. 툭 떨어진 다마고치가 발 앞에 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선택을 해야 한다. 행운을 다시 가지고 갈 것인가, 영원히 이곳에 묻어둘 것인가. 해 질 녘 오후의 평화로운 논두렁 풍경에 비해 내 모습은 비장하면서도 애처로웠다.
결국은 불안이 승리했다. 나는 영원히 그 다마고치를 취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자리에 그대로 다마고치를 놓아둔 채로, 다시 매달리다시피 하여 논두렁 경사를 올랐다. 그래도 결단 후 미련이 없어서일까, 내려가는 길만큼 고생스럽지는 않았다. 한 번 더 다마고치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다시 한번 생각하라는 슬픔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집으로 들어갔다. 그 후 며칠 동안 괜히 복잡한 마음에 멀찌감치 버려져 있는 다마고치를 보고 오곤 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바람 때문에 모여든 나뭇잎에 파묻혔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일주일이었나. 나와 그렇게나 사연 깊은 다마고치를 획득한 뒤, 딱 일주일 간 즐거웠다. 즐거움의 단 물이 다 빠지자 신기하리 만큼 쳐다보기도, 만지기도 싫어졌다. 그때 논두렁을 오르내리며 쓸렸던 아픈 손바닥이 다시금 욱신거려서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 다마고치는 내 서랍에 전원이 꺼진 채로 들어가 있고, 단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다. 논두렁에 영원히 묻어 버린 12살의 다마고치처럼.
어쩌면 나의 불안은 어린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깨우쳐 왔었나 보다. 확률이 높지 않은 행운이 나에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은, 확률이 높지 않은 불행도 언제든 나를 덮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혹여나 불행이 쫓아올까, 행운을 얼른 땅 속에 묻어 버리는 바보 같은 결정을 했다. 그렇게 묻어 버리면, 불행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나를 그냥 지나칠 것만 같았다.
행운을 땅 속에 묻지 않아도 불행이 찾아오지 않을 수 있고, 행운을 감춰 버려도 불행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쉽게 말해 ‘팔자’라고 하던가. 행불행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기력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꽤나 편안한 말이기도. 어쩌면 불안은 모든 것을 ‘팔자’인 것으로 치부해 버릴 때 가장 다루기 쉬워지는지도 모르겠다. 12살 때나 지금이나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이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불행을 얼마쯤은 팔자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큰 변화다. 물론 행운도 마찬가지이다. 또다시 300%의 행운이 내게 찾아온다면 버리지 않고 소중히 즐겨 줄 자신이 있는데, 과거의 내가 자신을 던져 버린 것이 야속해서인지 다시는 나에게 발걸음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