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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리 Oct 05. 2022

20살: 엄마의 출근 소리

후회되는 존재일까 봐 불안했던 마음

'철컥-띠리링’

   매일 7시 30분이면 엄마가 출근하러 나가며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한 번씩 잠을 깨우곤 했다. 하지만 엄마 배웅보다는 잠이 더 좋은 철없는 딸은 이내 다시 잠에 빠졌다. 통근 거리가 상당했던 엄마는 성실해야 했다. 예민한 내가 한 번도 엄마의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던 걸 보면 아마 엄마는 알람 없이도 제시각에 눈을 떴던 것 같다. 세수하고 옷 입고 나가면 그만이었던 내 등교 준비와는 달리, 엄마는 ‘가정’이라는 직장의 업무가 아침부터 한가득이었다. 설거지, 옷 정리, 반찬 만들기 등의 일들을 소홀히 한 적 없는 그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아직 (대)학생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엄마의 업무에 대한 부채감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고등학생일 때는 엄마보다 일찍 나가느라 몰랐었던,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늦잠 자느라 몰랐었던 엄마의 외로운 출근 준비. 그저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해낼 뿐이라고 합리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과제로 인해 밤을 새우고 새벽 6시쯤 자려고 누웠던 어느 날. 이상하리만큼 잠이 오지 않더니 조용한 엄마의 출근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6시가 되자 별도의 알람 소리 없이 ‘드르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타박타박’ 엄마는 작은 발걸음으로 거실로 나오신다. ‘꿀꺽꿀꺽’ 물을 한 잔 드시고는 곧바로 아침을 차려 드신다. ‘쟁그랑’ 숟가락이 밥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몇 번 나지도 않았는데 식사가 끝나 버린다. ‘달그락달그락’ 어제저녁에 내가 먹다 남은 밥그릇까지 함께 설거지하는 소리가 끝나고, ‘탈탈탈’ 약봉지 터는 소리가 들린다. 맞다, 엄마는 잔병치레가 많아서 드시는 약도 많았지. 그리고는 씻으신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드르르륵’ 문을 닫으신다. 한참을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걸 보니 아마 화장을 하고 계신 걸 거다. 그리고 다시 문이 열리며 ‘치익 치익’ 향수 뿌리는 소리가 난다. 이내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는 출근하신다.


‘철컥-띠리링’


  예민한 딸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천천히 움직이던 엄마의 출근 준비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 작은 소리들이 내 마음을 어찌나 크게 울리던지, 시끄러워서 다시 잠을 잘 수 없었다. 엄마가 일찍 일어나는 것도, 나를 위해 조용히 준비하는 것도, 꼭 집안일 한두 가지쯤 하고 나가는 것도 다 알고 있었는데. 그날 엄마의 출근 준비 소리는, 엄마가 얼마나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하나부터 열까지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마음이 눈앞에 보였다. 그것은 ‘내가 엄마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었다.


   엄마의 얼굴은 늘 피곤했다. 흐린 눈 커플에는 피로가 가득했고, 좁고 가녀린 어깨는 엄마에게 주어진 업무들이 양쪽에서 끌어내리기라도 하듯, 무겁게 축 쳐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피로의 흔적이 없는 해사한 웃음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었다. 어떨 때는 웃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나 때문이라고 할까 봐, 얼마큼 피곤한지는 묻지 않았다. 엄마를 보며 나는 엄마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가사를 전혀 돕지 않는 남편, 아직 대학생이라 뒤치다꺼리가 너무 많은 두 딸들. 직장이 두 군데인 삶을 살려니 어찌 고단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해 뒤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딸에게 행복하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당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속삭였다. ‘것 봐, 엄마는 너무 힘들어서 너를 낳은걸 후회하고 있어.’


  그 이후로 줄곧 엄마가 6시에 문을 여는 소리에 잠에서 깨곤 했다. ‘드르르륵’ 소리가 열리자마자 나는 귀를 막았다. 엄마의 피곤한 출근 소리가 너무나도 괴로웠다. 약 한 시간 반쯤의 준비가 끝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후에야 귀를 막았던 손을 떼고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엄마가 퇴근 후 해야 할 집안일들을 조금씩 해놓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좀 덜 ‘짐’이 되는 것 같았다. 또 어떤 날은 아예 엄마가 일어난 시간에 일어나서 함께 아침을 먹기도 했다. 그것이 실제로 엄마에게 얼마큼 도움이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엄마의 출근 소리가 덜 아파서, 그냥 그리했다.


  세상 모든 불효자의 유통기한 짧은 결심들처럼, 나 역시도 금세 적응이 되었다. 서서히 아침에 깨는 날이 줄더니, 어느 쯤 지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어쩌다가 한 번씩 잠에서 깨는 날에는 여전히 귀를 막거나 일어나서 엄마랑 마주했다. 불안은 해소되지 않은 채 가슴속에 묻혀있었나 보다.


  그렇게 꽁꽁 숨어 있는 불안을 굳이 꺼내보지 않고 살아가던 어느 날,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불안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는 너를 낳은 걸 후회하고 있어.’라는 생각이 이따금 맴돌곤 했다. 그래서 해답을 찾고 싶었다. 나는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대신 마주 보고 있을 때가 아닌, 함께 티브이를 보며 간식을 먹고 있는 타이밍을 잡았다. 엄마가 오랫동안 고민할 것을 우려하여, 적막의 빈틈을 채워줄 음식 씹는 소리가 필요했다.


“엄마, 나 낳은 거 후회 안 해?”

“응. 후회 안 해.”

“다시 돌아가도 나 낳을 거야?”

“당연하지. 너네만 보고 살았잖아.”

“나 낳으려면 아빠랑 또 결혼해야 되잖아. 그래도 낳을 거야?”


엄마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답했다.


“한 번 해봤으니까 어려울 것도 없겠지 뭐. 너네가 나온다면 다시 할래.”


  엄마의 고민 없는 확실한 대답에 간식 먹는 소리 따윈 필요 없었다. 긴장해서 뛰었던 심장이, 즐거움에 다시 뛰기 시작했다. 엄마의 대답은 내 불안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엄마는 딸 앞에서 늘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는 없어졌다. 때때로 자식에 대한 후회가 드리워도, 한 켠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지만, 시선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방 한 구석 거미줄을 말끔히 걷어 낸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 때문이라고 할까 봐 묻지 못했던 숱한 질문들도 던질 수 있게 됐다. 얼마나 피곤한지, 어디가 아픈지, 오늘 일은 힘들지 않았는지, 그리고 나를 낳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지. 그 후 불안이 가로막고 있던 엄마와 나의 사이가 훨씬 유연해졌다. 괜히 꽁 해 있느라 더 꺼내놓지 못했던, 엄마 딸이라서 너무 다행이라는 표현도 훨씬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됐다.



  엄마는 가끔 피곤할 때면 “너 키우느라 고생해서 이렇게 늙어버렸어. 괜히 낳았어.”라고 투덜 댄다. 그럼 나는 “누가 낳으래? 이미 낳은걸 어쩌겠어.”하고 되받아친다. 살벌하면서도 유해한 것 같은 모녀의 농담 뒤에 웃고 있는 진심을 우리는 안다. 엄마는 내가 양육되고 싶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닐 때가 많았고, 나 또한 엄마가 키워내고 싶었던 딸의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후회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엄마고 딸인 것이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는다. 그리고 너무 쿨해서 허무하기까지 한 엄마의 대답이 나를 후회하게 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쓸데없는 불안을 진작에 '톡' 깨 놓았다면, 거미줄 없는 쾌적한 방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편안했었을 텐데,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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