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을 동의하지 않는 분은 아마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유튜브는 무엇이기에 세상을 이렇게 바꾸어 버렸을까요?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유튜브는 대중의 직접적인 선택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시스템"을 구현했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우리들은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남이 선택해준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마트에서 가서 쇼핑을 합니다. 수많은 제품들이 진열대에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마트에 유통되는 품목은 우리들이 선택하지 않은 것입니다. 누가 선택했을까요?
이마트, 롯데마트 등 유통업계입니다. 즉 우리는 유통업체 바이어들이 선택한 품목들 중에서 쇼핑을 합니다. 대중이 선택은 했지만, 직접적인 선택은 아니었던 것이죠.
예전에는 모든 것이 이런 식이었습니다.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고 싶으면, 할리우드에 가야 했습니다. 아티스트가 되고 싶으면, 메이저 음반기획사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개그맨이 되고 싶으면 지상파에 입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유튜브를 하면 됩니다. 유튜브를 통해 바로 대중에게 부딪치면 됩니다. 오로지 내 실력으로 모든 것을 평가받습니다. 내가 어디 출신이든, 어떤 인종이든, 어떤 대학이든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대중에게 즐거움만 준다면 말이죠.
대중의 선택을 받으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불가능 했던 일입니다. 기성 시스템의 문턱을 넘어 다양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 꼭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안가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왜? 유튜브가 광고수익을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활동이 다시 세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즉, 유튜브가 세상에 미친 모든 영향은 크리에이터들이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한 결과입니다. 그들이 대중의 선택을 받으려면, 대중의 욕망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을까요?
첫째.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원합니다.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뭉칩니다. 예전에는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이제 유튜브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로 뭉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뭉치는 좋은 경우든, 테러리스트나 극단주의자가 뭉치는 나쁜 경우든 말이죠.
또한 사람들은 크리에이터들에게 강한 소속감을 가집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버를 다른 사람들도 같이 좋아합니다. 당연히 공동체가 형성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파편화될 수 밖에 없는 외로운 개인들은 친구나 가족보다 유튜버들이 자신을 잘 이해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에 따라, 유튜버들에게는 팬들과의 직접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죠.
이런 변화는 사회적으로 미디어의 신뢰도를 바꾸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정보는 날이 갈수록 많아지지만,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누군가 정보를 대신 처리해줄 존재가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그게 대기업의 브랜드나 신문&방송 등 기성 미디어였습니다.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그동안 봐온 유튜버를 믿고, 그들이 추천해주는 것을 신뢰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그래서 과거에는 홍보 담당자의 힘이 컸다면, 이제는 인플루언서의 힘이 더 커지게 됩니다. 기업의 홍보는 믿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의 말은 믿습니다. 따라서 기업이 유튜버를 통해 홍보하고 싶으면 진정성을 헤치면 안 됩니다. 후원만 하고 유튜버가 하고 싶은 데로 하게 해야 합니다. 기업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 상업적인 접근은 역효과만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들은 쾌락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유튜버들은 사람들에게 쾌락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게다가 유튜브도 유튜버들이 만든 콘텐츠들은 사용자에게 맞춤형으로 추천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추천이 없으면 오히려 서비스 이용 경험을 안 좋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튜브의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맞춤형입니다.
문제는 이 '맞춤형'이 좋은 의미도 있고, 나쁜 의미도 있다는 것입니다. 유튜브를 통해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에게 맞춤형 콘텐츠는 선순환을 부릅니다. 하지만 우울한 사람에게는 정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겠죠. 그래서 알고리즘을 보완하는 것이 항상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맞춤형 콘텐츠는 콘텐츠 내용을 넘어 소비행태의 측면에서도 봐야 합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기에 긴 분량보다는 짧은 분량의 콘텐츠가 인기를 끕니다. 또한 맞춤형 알고리즘은 과거의 콘텐츠도 가져와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드라마나 예능이 새롭게 조명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같은 영상을 본다고 해도, 결고 같은 시간대에 보는 것은 아니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할 때 볼 수 없고 또 개인 맞춤형도 아닌 기성 미디어의 콘텐츠들의 인기는 떨어지게 됩니다. 기성 미디어가 인간의 하루 24시간에서 차지하는 분량을 유튜브에게 많이 빼앗긴 것이죠. 유튜브의 폭넓은 선택권과 접근성으로 예전과 같이 국민 반이상이 보는 드라마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앞으로 이 흐름은 가속화될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