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고전 읽기

나의 진정한 삶을 찾는 여정, 데미안 (줄거리, 요약)

헤르만 헤세, 고전 읽기

by 지렁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기를 담은 내용입니다. 보통 데미안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대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런데 이 유명한 문장이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대목이 '아니다'는 점을 알고 계셨나요? 이번 포스팅에서 데미안에서 진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가장 유명한 대목 바로 뒤에 추가된 문장을 살펴봐야 합니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자신의 세계를 깨뜨린 새가 날아가는 곳인 '압락사스'는 과연 어떤 신일까요?



'우리의 신은 압락사스야. 그런데 그는 신이면서 또 사탄이지.
그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압락사스는 자네 생각 그 어느 것에도,
자네 꿈 그 어느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147쪽

압락사스는 선하면서 동시에 악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생각도 옳지 않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압락사스의 특징이 도대체 왜 중요한 것일까요?


보통 우리는 '내가 선택해서 내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른들의 말씀이, 사회의 도덕률이, 종교적 정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돼. 더러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라지. 그런 나무람을 그만두어야 하네.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님 혹은 그 어떤 하느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말이야. 그런 물음이 자신을 망치는 거야 - 147쪽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가능하면 안 되지 않나? 예를 들면 나 자신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이 방해가 된다고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놀랍게도 책에서는 살인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피스토리우스) 아무것도 무서워해선 안 되고, 영혼이 우리들 마음속에서 소망하는 그 무엇도 금지되었다고 해서는 안 돼

(싱클레어) 그러나 생각나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잖아요! 어떤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고 죽여서는 안 되잖아요

(피스토리우스) 상황에 따라서는 죽여도 돼. 다만 죽이는 건 대체로 오류지. 생각을 스쳐간 모든 것을 그냥 행동으로 옮기라는 게 아닐세. 다만 좋은 뜻을 가진 착상들을 몰아내고 그걸 이리저리 도덕화해서 해롭게 만들지 말라는 걸세 - 151쪽



살인도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건 뒷부분에 나온 핵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온 말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스스로 생각하라는 것이죠.


무작정 환경에 순응하지 말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데미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129쪽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데미안'입니다. 즉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이고,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던 모습들을 극복합니다.


결국에 그는 자신 안에 있던 '선한 나'와 '악한 나'를 모두 포용하며 그 이상의 존재가 되죠. 이를 통해 싱클레어는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사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이죠.



(데미안)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번 필요로 할 거야.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 221쪽



싱클레어의 스승이었던 '데미안'의 마지막 말에서 싱클레어의 성장이 보입니다. 이제 싱클레어는 밖에서 데미안(어른)을 찾고 의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데미안이 있는 어른이라는 것을요.






결국 데미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며, 하나의 세계를 깨뜨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새가 왜 투쟁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세계를 깨뜨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또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산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17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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