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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부엉이 J May 19. 2023

기성세대가 가진 연고주의 인간관계의 합리성


MZ세대 등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취향’을 기반으로 관계를 맺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의사와 관련 없이 선천적으로 형성된 학연, 지연, 혈연 기반의 관계가 아닌 분명한 목적성을 띈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올해 나온 주요 트렌드 책들을 보면 현대인들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시 1) MZ세대는 학연, 지연 등 소속에 기반을 둔 끈끈한 관계가 아닌 취향을 토대로 한 느슨하고 가벼운 관계를 맺는다. 관심사와 취향만 맞는다면 나이, 학교, 직장 같은 신상정보는 중요하지 않다.

: Z세대 트렌드 2023, 대학내일연구소 저


(예시 2) 인덱스 관계는 ① 만들기, ② 분류하기, ③ 관리하기의 3단계로 나뉜다. 먼저 관계 만들기는 과거처럼 학연·지연 같은 인연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혹은 완전히 우연에 기대는 ‘랜덤’ 방식으로 형성된다.

: 트렌드코리아 2023,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이런 변화 속에서 학연, 지연, 혈연 등 기성세대의 연고주의 인간관계는 ‘꼰대’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동안 당연했던 구성원들의 단합을 위한 퇴근 이후 저녁회식은 청년 세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불필요한 행위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또한 공정함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같은 고향이라고,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혜택을 주는 것은 그야말로 부정의함의 화신이 되었죠.


물론 몇몇 사례에서 연고주의 인간관계는 한계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과연 연고주의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납득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행동일 뿐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해보고자 합니다.





베이비붐세대, X세대 등 기성세대는 MZ세대 보다 상대적으로 집단주의 문화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면 기성세대는 신세대 보다 낯선 사람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도 MZ세대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내 취향에 맞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당연히 편하고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기성세대가 살았던 환경은 그러기가 힘든 구조였습니다. 현재는 주 5일제, 52시간 근무제가 확산되며 퇴근 이후의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주 5일제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시점은 2002년이고 5인 이상의 사업장까지 확산된 시기는 2011년으로 지금부터 불과 10여 년 전입니다. 기존 주 68시간 근무제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로 변경된 시기는 2018년이죠.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584)



즉, 기성세대는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금요일을 넘어 토요일까지 근무해야 하는 시절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남성은 하루종일 일하고, 여성은 육아를 전담하는 이원적 구조가 자연스럽게 성립되었습니다. 


나만의 시간이 없이 회사가 곧 나이고, 육아가 곧 나인 시대에서 기성세대는 살아왔습니다. 여성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군가의 엄마로 불렸고, 남성은 소속된 직장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었습니다. 당연히 취향이라는 것을 가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는 낯선 사람과 만나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할 경우, 본능적으로 ‘공통점’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서로 공통점을 소재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나만의 취향을 가질 수 없었기에 졸업한 학교, 태어나고 자란 고향, 남성이라면 군대 이야기, 여성이라면 자식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모두가 거의 동일한 생애주기로 살고 있었기에 이야깃거리가 되기 더욱 쉬웠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인간관계가 성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성세대가 특별히 집단주의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게 그 당시에 가장 ‘합리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MZ세대로 상징되는 신세대가 겪는 세상은 다릅니다. 퇴근 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나만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스마트폰을 가지고, 나만의 SNS 계정을 운영하며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합니다.


이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추구할 수 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학연’, ‘지연’, ‘혈연’을 통한 관계가 아닌, 내 '취향'에 맞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나의 행복을 위한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 것입니다.



출처 : 통계청 네이버 블로그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보며 가치를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연고주의 인간관계는 옳지 않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문제다, 저출산이 문제다 등등 이죠. 


하지만 현상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은 순간순간 비합리적으로 행동할지라도, 행동을 모아보면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결국 현상이 아닌 '현상이 나타나게 된 이유'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지금은 거의 사라진 저녁 회식 문화도 나름의 근거가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현준 교수님의 저서 '공간의 미래'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퇴근 후 직장 동료들끼리 식사하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유는 뭘까?
다른 나라에서는 수 백년에 걸쳐서 진행된 산업화가 우리나라는 수십 년만에 급격하게 진행됐기에 벼농사 노동 문화가 남아 있어서다.

벼농사를 지을 때 옆집 이웃은 잠만 따로 잘 뿐이지 동네 전체가 거의 같은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도시 속 회사의 노동 방식은 벼농사 노동문화와 달랐지만 벼농사 문화의 관성으로 동료들과는 가족처럼 밥도 같이 먹고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에도 가족처럼 밥을 같이 먹는 회식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요즘 기성세대와 MZ세대가 자주 대비되고 있으나, 결국 근본은 동일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점을 비난하기보다는, 나와는 달랐던 환경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결국 모두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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