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세상읽기 2020년 22주

나보다 남을 위할 때 우린 더 행복하다

by 지렁이

1. 기사 링크




2. 핵심 대목

'고대의 성현들은 대부분 행복이란 밖에서 찾아 헤맨다고 얻을 수 없으며, 행복이 우리 안에서 혼자 솟아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헤이트는 현대 심리학의 연구 결과들이 또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행복은 사람과 사람들이 맺는 관계 안에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리고 사랑받을 때 행복하며, 나 자신을 위할 때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나서 더 행복감이 높다.'



3. Review


한 때 제 삶은 타인의 평가가 기준이었습니다. 재가 원하는 공부, 활동보다는 다른 사람의 평가가 우선이었습니다. 시험을 잘 보고, 높은 등수가 나오면 친구들의 감탄과 선생님의 인정에 기뻐했습니다. 스스로가 엘리트가 된 것 같았습니다. 반면 성적이 떨어지면 내색은 안 했지만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결국 이런 삶은 지속하지 않다는 것을 실패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때부터는 자신의 세계에 충실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고,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만족했습니다. 타인으로 인한 고통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즐길 만했습니다. 나름 행복은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면 관계에서 오늘 불행은 없지만, 동시에 그로 인한 행복도 없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많이 극단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O, X의 문제로 여겼습니다. 고통은 피하고, 행복은 좋다. 하지만 고통을 회피하는 순간 행복도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어느 정도로 같이 가냐의 문제였죠.


지금 생각하면 삶은 대부분 이분법이라기보다는 정도의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너무나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삶 전체에서 정의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봉사한 사람이 집에 와서 자식들이 어지른 방안을 보고 짜증을 확 낼 수도 있는 법입니다.


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성차별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부문에서는 참으로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는 지극히 비합리적이고 보수적일 수 있고요. 스스로 타인에게 독립적이고 싶지만, 동시에 너무 의존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좋았던 친구, 직장동료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나 이상하게 행동할 수 있는 법입니다.


결국 봐야 하는 것은 방향성 같습니다.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직선으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좀 울퉁불퉁하더라도, 이리저리 빙빙 돌아간다고 해도 결국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 정의로울 수 없을지라도 계속 스스로의 잘못을 뒤돌아보고 반성하겨 정의를 추구하는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정의롭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를 봐도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개인/집단이 있고 그렇지 않은 집단이 있습니다. 그들이 전적으로 좋은 행동을 한 것도, 또 좋지 않은 행동을 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가는 다릅니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이고 모여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를 사람들이 어떻게 보았냐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평가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라면, 단발적인 변화가 아닌 근본적인 가치 변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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