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세상읽기 2020년 23주

: 당신이 누구인지, 개는 묻지 않는다

by 지렁이

1. 기사 링크




2. 핵심 대목


"우리 개들은 내 외모를 탓하지 않으며, 내가 무엇을 해서 돈을 버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개는 처음 만난 견주가 자신을 예뻐해 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마음을 연다. 재산이 많은지, 장애가 있는지 따위는 전혀 개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한번 주인을 정하면 그 개는 견주가 먼저 떠나지 않는 한 평생 그의 곁에 앉아 그만을 바라본다. 꼭 견주가 뭔가를 해줘서가 아니라,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다. 만일 내가 일이 잘 안풀려 단칸방으로 이사간다 해도, 개들은 나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할 것이다."



3. Review


'개만도 못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치욕적인 말입니다. 아! 물론 개에게 말입니다. '~만도 못하다'라고 할 때 기본적으로 비하의 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 대부분이 개만도 못한 세상에서, 개를 비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짐승(개) 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닭대가리만 못하다' '금붕어 같은 기억력' 등등. 인간은 짐승들보다 능력이 뛰어다는 전제가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꼭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능력만으로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께 불효를 했을 때,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합니다. 즉 효도는 짐승조차 지키는 가치라는 것이죠. 욕구를 참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말을 합니다. 즉 인간은 능력도 동물보다 뛰어나지만, 동시에 도덕적으로도 뛰어난 존재여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인간적' '비인간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따뜻하게 돕는 사람을 보고 '인간적' '인간미'가 넘친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냉철한 사람을 보고 '비인간적이다' '로봇 같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인간이라고 할 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우리가 쓰는 언어는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강아지만도 못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강아지들은 순수하게 사람을 사랑하고 있으나, 정작 사람들은 사랑의 이름으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상대가 조금이라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사랑을 버립니다. 끊임없이 상대방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개인의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사회가 이렇게 만든 것이겠죠. 치열한 경쟁,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인지 모릅니다. 앞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면, 우선 학생이 몇 등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인 게 중요한지를 보는 교육으로 바뀌는 게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신문으로 세상읽기 2020년 22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