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구급방 모르면 경찰이 될 수 없는 나라
안녕하세요 '글쓰는 부엉이 J'입니다.
얼마 전 필명도 리뉴얼하고 '좋은 글 소개'라는 가제를 '신문으로 세상읽기'로 바꾸었습니다.
그동안은 주당 기사 1개씩 소개하고 리뷰를 적는 방식이었는데, 다음 주부터는 여기에다가 최대 3개까지 읽을만한 기사를 밑에 첨부하는 형식으로 바꿔서, 혹시 관심 있는 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순경이 되려면 향약구급방 간행연도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에 내가 수험생인 양 화가 났다. 순경이 저 고려 시대 의서 간행연도를 알아야 한다면 총경은 침과 뜸을 놓는 데 능해야 하며 경찰청장은 새로운 한의서라도 집필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이 문제에서 어떻게든 그들 중 상당수를 좌절시키고야 말겠다는 출제자의 의도 말고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
"한국의 시험은 누굴 뽑는 시험이 아니라 떨어뜨리는 시험이다. 대학에서 심도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학생을 뽑는 것이 아니라 쓸모없고 비현실적인 경쟁을 시켜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시험이 지금의 수능이다. 그러니 대학생이 돼도 제대로 된 글 한 편 못 쓰고, 똑 부러지는 발표 한번 못 하는 것이다. "
대학생이 되는 것과, 공무원이 되는 것과, 신입사원이 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시험을 우리나라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미 무엇을 시험 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험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뽑는 시험이기보다는 수많은 지원자를 논란 없이 탈락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시험은 부조리에 가득 찬 적폐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시험에 대한 논란은 산업구조의 변화와 관련 있습니다. 고도성장기 시절 기업은 교육된 수많은 인재를 필요로 했습니다. 인재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많았습니다. 교육의 초점은 '문맹' 퇴치였습니다. 농업을 넘어 경공업, 중공업이 발전하는 시기에 읽고 쓸 줄 모르고,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성실하게 수행한 학생은 자연스럽게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생은 대학 과정만 밟으면 자연스럽게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기업은 직무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시험을 통해서 인재를 뽑았습니다. 인재는 부족하기에, 높은 학습능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 사람들을 대량으로 빨리 뽑아서 재교육시키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업무랑은 전혀 상관없는 IQ 테스트 같은 시험을 보았죠.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수요와 공급은 역전되었습니다. 일자리는 적은데, 인재는 많아졌습니다. 기업에서는 공채를 없애고 수시채용을 하는 곳이 늘어났습니다. 어차피 지원자는 많은데 그중에서 이미 완성된 인재를 뽑으면 됩니다. 굳이 재교육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이전과 같은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깨집니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성실하게 수행한 학생은 자연스럽게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성실하게 '학점'을 딴 대학생은 그냥 백수가 됩니다. 교육과 일자리의 불일치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예전과 같은 공채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도 많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지원자로 인해 경찰시험에 '향약구급방 간행연도'를 묻는 참사가 일어납니다. 진짜 경찰 직무를 수행하는데 하나도 쓸모가 없는 지식을 말이죠. 문제는 그렇다고 채용방식을 전면적으로 전환할 수 없습니다.
채용방식을 전환하면 물론 좋습니다. 대학교는 진짜 대학생 다운 대학생, 공무원은 진짜 공무원 다운 공무원을 뽑을 수 있겠죠.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첫째. 시스템이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예전 고도성장기 패러다임과 동일합니다. 그 말은 학생들은 그저 시키는 공부만 충실하게 하면서 시험 보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채용시스템만 바꾼다면 교육 및 채용시스템, 양 쪽의 불일치는 극심해질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 기업의 수시채용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부의 격차에 따른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2개 국어, 3개 국어를 요구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사교육비 투자 및 해외유학을 통해 그 조건을 미리미리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부유층입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공정성 문제가 터질 수 있습니다. 대학은 제대로 된 글을 쓰며 똑 부러지는 발표를 하는 대학생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글쓰기 능력과 말하기 능력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정원수가 제한된 일류대만 보는 현실 속에서 어떤 문제가 나타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변화했습니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와 현 교육 시스템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너무나 다릅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고, 그 모순은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갉아먹었습니다. 분명 분명 현재의 지식 주입식 교육시스템 및 평가시스템은 사회적 순기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변함에 따라 순기능보다는 그로 인해 폐해가 커지고 있죠. 결국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전면적인 교육 시스템 및 평가시스템 개혁은 필수 불가결한 것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