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에서 즐거움#4-공군 정보장교 예비역 중위 박영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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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가 태국에 놀러 왔다.
대학교 한 곳을 졸업할 수 있는 시간이라 여겨지는 3년 4개월(+ 알파)을 같이 공군에서 보낸 그가 방문해줬다. 4개월간 공군 교육사령부(경상남도)에서 그리고 약 1개월은 충청북도 으슥한 곳의 특기교육장에서 동고동락한 영효다. 우리는 공군 학사장교 125기 동기이며, 같은 정보 특기를 배정받은 전우다.
영효는 29살 먹은 회사원이다. 포항공대에서 전기전자를 전공하고, 비행기를 연상케 하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의 슬로건을 지닌 공군에서 비행기와 익숙해졌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유일의 국적기 회사인 '대한항공'에서 근무 중이다. 내 주변에서 전공을 살리고, 군 경험과 적게나마 연계된 직장을 구한 몇 안 되는 (신기방기) 인물이다.
영효의 방문을 시작으로, 11월과 12월에 각각 다른 동기들이 방문할 예정이다. 따라서 태국 방콕에서 향후 찾아올 손님들의 '의전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영효의 방문기를 복기해보고자 한다. 그와 동시에 뻔하디 뻔한 군대 얘기도 조금씩 섞어가며 과거 군생활을 회상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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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군사보안담당 출신으로써 책임감을 갖고, 공군에 누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사진과 그 추억에 관한 썰을 풀 예정이다. 군 관련 등장하는 부대 및 지역명은 인터넷에 이미 검색되고 공개된 내용으로만 기재했다.)
* 혹여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고 누군가 판단되면 꼭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즉각 수정/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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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군 중위로 만기 제대했고 현재는 은평구 소속의 예비군 기동소대장 편성되어 있다. 지금 예비군 훈련은 어떻게 받고 있느냐고? 다행히도 예비군에 정해진 훈령에 따라 해외 체류 중일 경우에는 "자동 면제"가 된다. 룰루랄라.
한편 군 생활하면서 총 3번의 부대이동을 겪었다. 1) 공군 교육사령부(사관후보생, 경상남도) 2) 제1전투비행단(전투정보/군사보안담당, 전라남도) 3) 공군 교육사령부(특기학교 교관, 충청북도) 순이다.
특히 교관생활을 시작하면서, 전국 이곳저곳으로 출장(훈련 및 회의, 견학 등) 다닐 기회가 늘어났다. 타 군부대(미군 지역 포함) 방문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군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전국에 널린 식도락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푸드 파이터(Food Fighter)로써의 내공을 기르는 시간을 가졌었다.
영효는 부산 출신이다. 그래서 군 복무도 집에서 가까운 남쪽을 동기 가운데 선호했었고, 아무런 경쟁 없이 대구지역으로 무혈 입성했다. 현재 회사는 또 부산이다. 학교는 포항이고, 군대는 대구, 태어나 자란 곳은 부산. 그는 경상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가 확실하다.
하지만 대한항공 직원이 된 후, 경상도 시골뜨내기가 남다른 클라스로 등극했다. 그 누구보다 전 세계를 용이하게 (+ 굉장히 저렴: 영효에게 직접들은 직원 가격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다닐 수 있는, 여행계의 신선과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경상도 남자이면서 현재 세계여행을 꿈꾸고 있는 영효. 실제로 주변인 가운데,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캐부럽다.
우리 125기 동기 약 200명 가운데 딱 10명이 정보특기를 배정받은 전우들이다.
나를 제외한(난 아직도 Ing 상태이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20대 청춘에서 꽤나 긴 시간을 함께 군에서 보낸 그 사실 자체 하나만으로도 의미 있는 집단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슬픈 사실은, (영효랑도 얘기를 나눴지만) 정보장교 동기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살갑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 정보특기 장교끼리 교육받으며 함께 보낸 시간의 총합이, 각자가 실질적으로 근무했던 곳에서의 시간보다 현저히 적기 때문일 것이다. 군 내에서 더 친한 부대 사람들과 소대 동기들이 다들 있다. 한편으로는 점점 잊혀가는 우리 정보특기 동기들이지만, 그래도 125기 유일의 정보특기라는 점. 그래서 이 사진은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영효는 이미 태국에 와본 적이 있다. 하지만 확실히 그때 와본 태국과 나와 함께 다닌 태국이 다르다고 한다. 관심사에 따라 여행 일정과 경로가 달라지고, 혼자와는 달리 다른 누군가와 동행할 때면 더 많은 여행 아이템들이 변경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존에 방문한 나라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고, 갔던 곳에 또 가도 괜찮을 수 있다.
누구와 함께하는 가에 따라 달라지는 여행의 얼굴. 그 놈 참 신기하다.
영효는 과거 '김윤혜 양의 방문'에 이어 두 번째로, 내 인턴 근무지를 직접 방문한 지인이다. 그리고 영효도 대만족. 그 누가 오든지 간에 "유엔"은 그 이름 하나만으로 "먼가 있어 보이는" 조직이긴 한가 보다. (실제로 내부에서 일하다 보면,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임을 알 수 있다)
영효는 이곳 기념품점에서 United Nations 목걸이(사원증을 걸 수 있는)를 기념으로 사면서, "적어도 부산지역 대한항공에서 UN 목걸이를 착용한 최초의 1인이지 않겠냐는" 말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이곳에의 기념품이, 영효가 문득 "아, 맞다. 그때 태국 주영이 형 보러 겸사겸사 갔었을 때 좋았지~"라고 회상케 하는 추억장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효에게 출국 전 부탁했던 '결재판'이다. 그 안에 우리 부서명인 UNCCD를 예쁘게 오려 끼워 넣었다. 군 생활하며 참 결제받을 일이 많았다. 물론 현재는 온누리 시스템을 이용한 '전자결제'가 물론 대부분이지만, 중간중간 보고할 내용은 인쇄하여 직접 대면보고를 하고, 중요한 사안은 별도 수기로 결제받는 것 군 조직의 결제 문화였다.
그곳에서의 습관이 여기서도 묻어난다. 정말 '습관'이 한 번 몸에 베이면 도저히 뿌리칠 수 없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웃어른들이 신신당부를 하셨나 보다. 어이쿠. 이런 생각하기 시작하면 고쳐야 할 게 산더미다. 그래서 영효에게 출국 전 특별히 주문했다. 선물받은 결재판을 사용할 때마다 나도 영효가 생각나는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사람마다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다. 영효는 유엔 내에 있던 국제 우편을 창구에서 '여자친구'님에게 엽서를 보낸다. 오호라. 숙맥으로만 여겼던 영효에게 낭만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역시 사랑을 막 시작한 달달한 Love beginer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소소한 것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데, 이게 바로 그것일까! 나도 결혼해서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아주 잠시..
영효는 우리 집에서 최초로 잠을 자고 간 여행객이다. 우리 부모님은 초등학교 때부터 집에 친구들이 오가는 것을 불편해하신 적이 없다. 하물며 자고 가는 것도 늘 승낙해주셨었다. 나 또한 친구들 집에서 가끔 잤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편 고등학교 때부터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타지 생활을 계속 이어나갔다. 워낙 객지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일까? 다른 누군가 내 영역에 들어오고 침대에 몸을 눕히는 것에 큰 부담이 없다.
살아오면서 하나님에서부터 주변 지인들에게 까지 받은 게 참 많다. 받은 만큼 돌려드려야 하는데, 내가 방콕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잠자리 제공 말고는 없다. 산림청에서 나오는 파견비용은 딱 1인이 밥풀칠 하기에 적합한 액수다. ㅠ.,ㅜ
영효가 이곳에 머물면서 얼마나 깊게 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머물 예정인 다른 지인들이 호텔에서의 편안함을 느낄 수는 없을라가 생각한다. 가끔 바퀴벌레도 등장한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누추한 이곳에 방문해주시길.. 두 팔 벌려 환영모드 24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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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연히 현역 복무 중인 자들은 모자이크 처리다. 2) 노파심에 말하지만, 내가 속한 특기학교의 공식 교관모는 "빨간색"이 아닌 야리꾸리한 색이다; 교육사령부 내 학교별로 빨간색부터 교관(+조교) 모자의 색깔이 다양하다. 따라서 당시 대장님께 허락을 받아 훈육담당관들끼리 '빨간 모'로 통일했다. 지금은 다시 바뀌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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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얘기를 하다 보니 또 군대 생각이 난다. 군 복무를 하다 보면 잠을 깊게 못 잘 때가 종종 있다. 비행단의 정보장교 시절, 1) 첫 OJT 교육기간 간 선배장교로부터 떨어지는 날 시퍼런 명령과 많은 양의 업무. 그리고 인력수가 적어 빈번히 돌아오는 상황실 당직.
2) 년간 몇 번에 걸친 (들으면 두통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ORE와 ORI 훈련, 그리고 보안감사. * 무조건 시간 외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은 나를 멘붕의 상태로 내몬다.
특기학교 교관 시절, 1) 첫 교관으로 임명되기 전의 교육준비 과정과 통과한 이후에도 계속되는 재검증의 과정. 2) 교육생들 상담 및 훈육을 위해 투입되어야 하는 시간 (물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안 할 수도 있으나, 그런 교관은 적어도 정보특기엔 없다) * 예외 없이 시간 외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도둑과 같이 찾아왔다 사라진다. 한편, 영효는 2교대로 순환하는 근무지에 있었다. 이곳 역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 나름의 '잠 못 이루는 고충'이 존재할 것이다.
사실 군 부대 특성 상 객관적인 근무여건의 상하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대한민국의 건아들이 일제히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사실, 28 청춘 젊음의 일정 시간을 제약된 공간에서 투자하는 그 사실은 동일하다. 이곳이 힘들고 저곳은 꿀빤다. 저곳은 꿀 빨고 이곳은 힘들다. 군대 가기 전, 군대에서 자대 배치받기 전 별의별 루머가 들려온다.
어허. 잠깐만.
이러쿵 저러쿵해도 국방부 시계는 어쨌든 흘러간다. 나도 제대하고 나니, 그 길고 단조로웠던 시간이 먼 과거로만 느껴진다. 그러니 후배들이여, 군 복무하며 자신이 있는 곳을 귀히 여기고, 그 곳을 천국이라 생각해보자. 그럼 장수할 수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영효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도 "푸드 파이터"라는 점이다. 여행의 주 목적은 식도락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맛집 탐방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헤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고, 가격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라는 주의. 바람직한 자세다.
밤문화나 유흥을 기대하고 태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영효는 다르다. 그 나라 사람들이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다니고, 그곳 맛집을 탐하는 21세기의 박삿갓이라 불려도 무방하다. 이렇게 영효와 처먹어가면서 "돼지가 되어가는" 쪼그마한 김주영 뚱땡이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지금 내 배를 보니 위험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운동을 더 해야 한다.
망고탱고에서 거하게 망고 일색인 상을 차렸다. 망고로 할 수 있는 디저트가 이렇게 많다고? 그래 엄청 많다. 망고를 사랑하는 이들이어~ 돌격 앞으로.
움 밀크에서 순도 백 퍼센트의 우유 아이스크림도 빼먹을 수 없었다. 촉차이 목장에서 맛볼 수 있는 그 맛을, 방콕 시내에서도 맛볼 수 있기에 꼭 찾아 가봐야 한다.
마담 무슈에서 고급스럽게 갈린 수박주스와 허니 레몬으로 목을 적시기도 했다. 진짜 내가 초대하는 손님들이 한 번씩 꼭 거쳐가는 것 같다. 왜냐고? 분위기가 기가 막히니깐.
빅 마마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대표 메뉴로 불려도 손색없는 까르보나라와 매운 스파게티를 폭풍 흡입했다. 둘 다 엄지를 치켜든다. 왜 이렇게 맛난 것이냐. 너는 나의 사랑스러운 찰진 면발이로다.
꾼댕 꾸어이짭 유안에서 쫀득쫀득 국수도 결코 놓칠 수 없는 별미였다. 베트남식이면서도 태국식인 이 묘한 육수의 국수는 한국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참 많다.
과일의 왕, 두리안을 안 먹고 떠나면 우리 '빵빵해진 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저렴한 두리안은 냄새가 독하고 맛도 약하다. 하지만 제철일 때 아주 잘 익은 비싼 두리안은 정말 "따봉"이란 생각이 들것이다. 두리안은 진심으로 과일의 왕이다.
배불리 먹어 재꼈더니 피로가 살살 온다. 마사지에 별 관심 없는 영효를 유혹하여, 내가 매주 이용하는 태국 최저가 마사지샵인 '메이마사지'로 직행한다. 영효의 생각이 바뀐다.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라면 마사지받을 만하다."
그렇다. 날 믿고 의지하는 자에겐 예상치 못한 큰 기쁨, "아앗? 병신 같지만 멋있는데?" 이런 병맛을 선사해줄 수 있다. 본인이 조금 내키지 않는 것이더라도 상대방을 위해 살짝 공간을 열어둘 때, 1/10 정도의 낮은 확률이지만 생각지 못한 재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때론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남에게 잠시 몸과 영혼을 맡겨보는 것도 괜찮다. 그게 우리 삶을 더 다채롭게 해주니까.
이렇게 먹어 다녔는데 안 퍼지면 사람이 아니다. 말없이 각자의 휴대폰 세계에 빠져 뒹굴거려본다. 여행 와서 잉여짓을 하면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다. 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거기까지 가서 시간 아껴서 팍팍 돌아다니면서 봐야지!! 안 돌아다니면 안된다!!" 하지만 내 빵빵해진 몸이 뇌에 명령한다. 피곤하니 뒹굴어라. 그리고 부가적으로 언어기능까지 차단해버린다. 이럴 땐 몸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것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다.
드러눕고 싶을 때 마음껏 드러누워 보자. 그리고 폰을 꺼내 나 여행 왔다고 지인들에게 자랑질도 해보자. 우리가 원하는 그 모든 소소한 행위들, 한국에서는 쉽사리 못하는 그 행동들을, 여행에서라도 실컷 하고 떠나 보자.
군대에 있을 때 거의 운동을 쉰 적이 없다. 그리고 퍼져 누워본 적도 거의 없다. 여기서는 배가 불룩불룩 나오기 시작한다. 운동도 약속과 컨디션에 따라 빼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히잉~ 아무것도 안 할래" 하면서 퇴근 후 침대로 쏙 들어가기도 한다. 그 당시엔 약간 퍼진 삶을 동경했었다. 그런데 정말 그 시기가 찾아왔다.내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행복은, 절제된 군대 생활이 있었기 때문에, 그 크기가 더 곱절로 느껴진다.
고진감래다.
영효는 일본에서 구입한 '가르시니아 약'(탄수화물 억제제)를 식사 전에 삼킨다. 짬밥 먹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영효다. 이제 남들과 같이 자유롭게 밖에 나와 이것저것 풍요로운 선택지를 두고 골라 먹을 수 있게 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몸을 위한 진중한 선택을 매 순간 해야 한다.
먹고 운동할 것이냐. 말 것이냐. 약으로 보충할 것이냐. 말 것이냐. 안 먹고 참을 것이냐, 그대로 강행할 것이냐.
나는, 원치 않게 자꾸 피둥피둥해지고 있다. 과거 날렵하던 몸이 조금씩 아저씨화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진짜 32살 아저씨이긴 하다. 그래도 절제하던 군 시절보다 지금이 너~무 좋다. 히힛. 내일도 맛집 가서 또 맛난 것 냠냠할 것이다. 에잇 될 대로 되라지. 나의 배때기를 거침없이 토닥토닥 거려 줘야겠다. 어차피 영효의 방문을 통해 '가르시니아' 비법에 대해 재각성하게 되었기에 이젠 걱정 없다. 조만간 구입해서, 내 태국 먹방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퇴근 후 집 앞 포장마차에서 아저씨들의 대화를 살짝 들어보자. 그들은 그곳에서 사나이들의 지속가능한 삶에 관한 양질의 정보를 나눈다. 우리 삶에 "병맛이긴 하지만" 주된 정보들이 이렇게 공유되는 것이다. 영효와 나의 대화도 그냥 이런 아저씨들의 대화다. 이렇게 같이 늙어가고 있다.
영효랑 있으니깐 군대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여성분들이 그렇게 싫어한다는 군대 얘기지만, 남자들 간의 연결고리는 그것 밖에 없다. 그리고 이거 제외시키면 우리 20대가 구멍나버린다.
영효가 카페 카사자밀라에 한 번 찾아온 적이 있다. 서울 본사에 연수차 머물렀기 때문에 경상도 토박이가 상경한 것이다. 그 때도 서로의 근황을 묻고, 여전히 군대 얘기를 했다. 앞으로 살아가며 영효를 만날 때마다 같은 대화가 반복될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늙어갈 것이다.
그래도 좋다. 군생활 이미 끝났으니깐. 아직 군대 안 간 후배들 있으면 제대하고 찾아와라. 밥 한 공기 흔쾌히 대접해드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