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아르바이트현장을 가다.
-봤다 봤다. 우리 봤다!
-여보! 고개 숙여, 못 본 척 해!
-우리 보고 눈이 동그래졌어.(음식을 먹는 척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먹는 척하는 남편과 나를 본 딸은 멈칫하더니 테이블을 재빠르게 닦았다. 남편은 얘기하고 올 걸 그랬나 라며 당황하는 딸을 걱정한다. 남편은 이내 딸을 흐뭇한 표정으로 슬쩍슬쩍 보았다.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우리가 온다고 얘기했다면 분명히 절대 오지 말라고 했겠지. 딸은 우리를 의식하는 듯 더 바쁘게 애슐리뷔페홀을 돌아다닌다. 자기에게 아는 척 말라는 거다. 그럴 수는 없지. 나는 태연하게 딸 옆으로 갔다. 하얀 접시에 음식을 담으며 딸에게 물티슈를 달라고 했다. 딸은 마스크 위의 눈을 빠르게 깜박깜박거렸고 머뭇대다가 말없이 앞치마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건넨다. 난 여기 음식 채우셔야 될 거 같아요라고 딸을 더 멈칫하게 만들었지. 재밌다. 딸은 내가 말까지 걸 줄 몰랐나 보다.
우리는 어차피 들킨 거 이제 느긋하게 딸을 지켜본다. 주말이라 빈자리는 손님들로 금방금방 채워지고, 딸은 부지런히 빈 접시를 치우고 닦는다. 하얀 셔츠와 까만 조끼의 유니폼이 잘 어울린다고. 우리는 서로 자기를 닮아 야무져 보이는 거라고 옥신각신했다. 딸은 족히 30개 이상의 하얀 접시를 양팔로 잡고 움직인다. 양쪽 어깨가 힘껏 올라가 있다. 이것도 나를 닮아 힘세다. 색색이 놓인 음식테이블의 아랫선반에 접시들을 다 채우고 돌아서서 걷는 딸의 어깨에 자신감이 묻어 있다. 이까짓 이쯤이야라는 6개월 경력을 가진 뷔페홀아르바이트의 당당함이 서렸다.
우리 옆테이블의 젊은 부부와 아가를 보며 딸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딸이 많이 자랐구나. 그때 딸은 지글지글 거리는 철판스테이크를 조심조심 들고 와 옆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헉 딸은 위험했다.
-여보, 방금 봤어? 쟤 삐끗하고 발 미끄러질 거 같았는데?
-어어어어, 휴우 넘어지는 줄 알았네.
-저 뜨거운 걸 들고 넘어지면.......
남편은 고개를 흔들며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유아의자에 앉아 있는 아가를 다시 한번 더 쳐다봤다. 아가는 방긋방긋 웃고 있다. 아이휴 다행이다. 남편은 조금 전 딸의 담방담방대며 아슬아슬한 행동도 날 닮았단다. 나는 남편의 말을 인정했다. 우리 집 부엌에서의 내 뒷모습을 딸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설거지하다 깬 접시가 몇 갠데.
딸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더 많이 움직인다. 우리는 기특했다가 안쓰러웠다. 저렇게 움직이니 집에 오면 잠으로 뻗어버리는 거지. 딸이 태연히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한 접시 모아 담아 정리한다. 남편은 고개를 돌린다. 남편은 비위가 약해서 저런 일을 절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저것도 날 닮았네. 좋은 것만 보고 자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저런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해내야 되는 것도 인생이다.
나는 딸을 더 보고 싶은데, 남편은 딸이 우리를 너무 의식하며 움직인다며 그만 가잔다.
남편은 남은 음식을 한 접시에 모으고 접시들을 겹쳐 쌓아 놓고, 물티슈로 테이블을 깨끗이 닦는다.
-우와 웬일이래?
-우리가 안 치우고 가면 쟤가 치워야 되잖아.
딸 덕분에 우리 남편이 달라질 거 같다.
우리가 딸의 눈을 마주치자, 딸이 고개를 아주 살짝 끄덕였다.
딸은 식당을 입장하는 손님들에게 안내한다. 딸의 팔꿈치에 다정한 친절이 묻어있다.
혹시 딸은 애슐리를 걸어 나가는 우리의 자랑스러움이 잔뜩 묻은 뒷모습을 봤을까.
봤으면 좋겠다.
이따 집에서 딸을 만나면 난리 나겠지.
엄마! 아빠! 갑자기 애슐리 오면 어떻게 해요!
근데 나 어땠어요? 일 잘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