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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Jun 19. 2024

흥하는 공부, 망하는 공부

비워야 보이는 것들

 또 늦었다. 10분쯤 늦을 것 같아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내고 덜 마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황급히 차에 올랐다. 부리나케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감시카메라가 없는 네거리에서 좌우 눈치를 보다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뀔 때 속력을 내어 잽싸게 통과했다. 앞 차가 주춤거리면 옆 차선으로 재빨리 끼어들며 곡예 운전을 한 덕분에 겨우 사주 명리 수업에 도착할 수 있었다. 딱 10시 10분이었다.


 

매주 지각하는 나를 보고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도 이젠 그러려니 하는 눈치다. 반기는 교수님 볼 낯이 서지 않아 까치발로 들어가 꾸벅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입 밖에 올리기도 부끄럽다. 다들 눈을 반짝이며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데 나는 맨 앞에 앉아 또 동문서답이다. 예습까지는 못 하더라도 복습은 꼭 해야 용어라도 입에 익을 텐데 수업만 왔다 갔다 할 뿐 평소엔 교재 한 번 펴 보질 않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골치 아픈 학생이다.      




 “아니, 아버님. 공부할 시간이 있어야 성적이 잘 나오지요.”

 계속되는 추궁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욱 아버님은 아이의 중간고사 영어 성적으로 잔뜩 화가 나 계셨다. 내내 과외를 시켰고 아이가 수업이 어렵다고 하면 과외 수업을 위한 과외를 또 붙여 줬는데 성적이 왜 이 모양이냐며 나를 타박했다. 강남 못지않은 학부모들의 학구열로 유명한 수성구 범어동, 경비가 삼엄한 고급 아파트에서 현욱이와 혜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 아이들의 하루 일정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철학책을 읽고 6시 40분부터 집 앞 영어 학원에서 원서 읽기를 한 후 곧바로 아침을 먹고 등교했다. 하교 후에는 요일마다 과외 수업이 잡혀 있었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수학과 과학, 화요일과 금요일은 논술과 피아노, 수요일과 토요일은 영어와 역사, 수업을 마치면 체력 관리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태권도 학원까지. 과제는 도대체 언제 하느냐는 물음에 현욱이는 쭈뼛쭈뼛 머리를 긁적이며 틈나는 대로 한다고 대답했다.      


다다익선, 워워!

 결혼 후 울산에서 신혼살림을 하게 된 동료 선생님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은 과외 수업이었다. 머리 회전과 이해가 빠르다며 아이들을 칭찬하던 선생님에게 과제도 잘해 오냐고 물었더니 말문을 닫았다. 한 달간 과외 수업을 다니며 나는 그 아이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일단 수업 시간이 문제였다. 워낙 바쁜 아이들이라 수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총 2시간 반, 즉 한 아이당 수업 시간 1시간 15분이었다. 한 시간은 매일 등원하는 아이들과 수업만 진행하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이었다. 시간을 조금 더 늘려서 1시간 30분씩 수업하자고도 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일주일 두 번 1시간 15분 숨 돌릴 틈도 없이 수업을 진행했다. 짧은 시간 내에 준비한 수업을 모두 마치자니 예정된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주어진 시간을 오버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방문을 나서면 다음 과외 교사가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쉬는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 수업을 시작했다.


 또 다른 문제는 과제였다.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고 곱씹어 볼 시간이 절실했지만, 수업을 마치자마자 다음 수업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으니 과제는커녕 단어 한 개 외울 시간조차 없었다. 시험 기간이 되면 모든 과목에 비상이 걸렸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라도 해야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그러모아 조금이라도 과제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하지만 풀어 본 문제의 답이 왜 틀렸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설렁설렁 공부하다 결국 시험 전날까지 목표했던 문제집 한 권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시험을 치르는 일이 반복되자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매번 수업을 마치면 어머니께 과제와 수업에 대해 상세하게 상담했다. 상담의 시작은 언제나 “오늘도 과제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였고 어머니의 대답은 “아까 다 했다고 하던데요.”였다. 답답한 마음에 아이들이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당장 필요하지 않은 과목의 수업을 줄이고 복습할 수 있는 시간 확보를 해 주십사 여러 번 부탁드렸지만,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선생님도 여기 학구열과 분위기 어떤지 잘 아시잖아요. 더 시켜도 모자랄 판국에 줄이라니요.”

 수업하려고 방 안에 들어서면 동태눈을 하고 영혼 없이 앉아 있던 현욱이는 시험 기간이 되면 졸음을 이기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욱이는 수업이 겹치면 혜지 방에서도 무슨 말하는지 다 알 수 있을 만큼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남자 과외 교사와 새로운 시작을 했다.


 “야, 하버드 나온 선생님이 가르쳐도 너는 안 돼. 맨날 졸고, 과제 안 해오고. 너 이 성적으로 자사고 갈 수 있겠어?”

 나는 속으로 그 말에 맞장구치며 현욱 아버님이 그렸던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을 큰 그림을 떠올렸다. 앞으로 일 년에 네 번 시험 점수가 나온 후 달달 볶이고 시달리게 될 그 선생님과 현욱이가 가여웠다.    

 너나 잘하세요

 경쟁 사회에서 내 아이가 좀 더 나은 조건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나도 엄마인지라 그들과 같은 마음이다. 매 학년 초 딸아이 학교 시간표가 나오면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가 받을 수업 계획을 촘촘하게 짰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교문을 나선 아이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버스나 지하철로 미술, 인지, 언어 수업에 갔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나는 영 못마땅했다. 아이가 피곤하건 말건 입시 준비하는 여느 아이들보다 시간이 많으니 틈새에 수업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려고 안달했다.


 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등원하여 삼삼오오 둘러앉아 게임이나 아이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탱자탱자 노는 꼴이 보기 싫어 미칠 지경이었다. 황금 같은 쉬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시험 칠 준비나 하고 있으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다 못해 어떻게 하면 이 시간까지 쥐어짜서 아이들이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도록 만들까 골똘히 궁리하며 아이들을 새초롬하게 보고 있었다. 그때 옛날 생각이 스쳤다.


 피곤함이 극에 달했던 고3 야간 자율학습 시간. 복도를 서성이던 자습 감독 선생님 눈을 피해 잠깐 엎드려 있던 나를 어찌 알고 나타나 창문 너머로 분필을 날려 정확하게 머리를 맞춰 깨우던 선생님을 원망하며 내가 어른이 되면 잠도 못 자도록 공부하라며 아이들을 들들 볶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런데 어른이 된 나는 어떤가? 현욱 아버님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욕심의 화살이 아이들에게만 겨누어진 건 아니었다. 2022년 12월, 왼쪽 난소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기 위해 영남대 병원에 입원했다. 코로나 이후 팽창한 온라인 세상에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었기에 나는 때는 이때다 작정하고 병원 침대에 꼿꼿하게 앉아 새벽부터 쉼 없이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처음에는 하루가 보람찼다. 링거줄을 꽂고도 미래를 준비하려 24시간을 바쁘게 살아가는 내가 너무 대견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플랫폼에 연결해 열심히 수업을 들었는데도 남은 수업이 줄지 않았다. 수업 내용이 환하게 이해되는 것도 아니었다. 혁신적인 타이틀의 생소한 과정에 혹해 신청만 해 두고 시간이 없어 못 듣는 수업도 점차 늘어났다. 듣지도 않을 거면서 적지 않은 돈을 날렸다며 매번 땅 치고 후회하면서도 길 가다 우연히 발견한 현수막 광고에 또 현혹되었다.


 사주명리학 수업. 훗날 사주 명리 전문가가 되어 상담 인파가 줄을 잇는 내 노년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들어야 할 수업이라는 생각에 덜컥 신청했다. 초급반 때는 기초 이론 중심이어서 오며 가며 수업만 들어도 따라가기 충분했다. 그러나 중급반으로 올라가자 복습 없이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어 수업 내내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학원 수업 중 멍하니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며 말없이 앉아 있는 아이들의 마음이 백번 이해되었다. 쉬는 시간에 동기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사주 명리 상담실 오픈을 목표로 연구반까지 계획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들 아무리 못해도 사주명리학 공부에 하루 한 시간 정도는 할애하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돈 내고 시간 들여 배우기만 하면 뭐라도 되겠지 했던 안일한 생각에 공부도 안 하면서 욕심만 앞세운 내가 부끄러웠다. 시간이 없어서 과제를 못 했다는 현욱이의 말도 귓가에 울렸다.


 ‘이제 다른 수업 신청해서 헛돈 쓰지 말고 사주 명리 공부에만 몰두해야지.’

 수업을 마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며 수성대학교 정문을 지나가고 있었다. 새 학기 평생교육원 수업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얼굴을 보면 운명이 보인다, 2024년 3월 관상학 개강’ 현수막에 눈길이 머물렀다. 차는 앞으로 나아가고 머리는 지나친 현수막을 향해 180도 반대로 돌아갔다. 얼굴만 척 보고도 그의 운명을 맞추는 도인이 된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목요일 오전 일정이 비어 있으니 거기다 구겨 넣으면 되겠다. 마감될까 봐 마음이 바빠져 차를 잠시 세웠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청 버튼을 누르려고 손가락을 디밀던 찰나 10분 전 나에게 정신 차리라며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시동을 켰다.

 “야, 너 진짜 왜 이러냐? 병이다, 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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